촬영 기자가 아니라 펜을 들고 쓰고 녹음을 따고 화면을 만들고 또 여러 실험을 한다. 그러려고 이 회사 이 자리에 왔고 전에 있던 회사에서보다 더 열심히 한다. 그런데도 채워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어제는 오랜만에 술을 마셨다. "네가 웬 술이냐"고 애인이 말하길래 몇군데 뜨지도 않은 기사 하나를 보냈다. 어떤 기자의 죽음, 며칠 전까지 포털 뉴스 1면을 차지했던 기사를 뽑아내던 그는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됐다. 여러 이유와 소문 그리고 사실이 언론인, 언론지망생, 일반에 떠돌았고 인스타그램에서 훔쳐보던 그 행보는 모두 정지돼 또 하나의 화석처럼 굳었다.


뛰어넘을 수 없는 것이 있다 했다. 그게 한두해가 아니었고 결국엔 운명을 마주했다는 그 기사가 거울이 돼 시퍼런 내 얼굴을 비칠 때가 있는 듯 했다. 환상 같은 것이라 해두자. 실험하기에는 주어진 게 늘어나고 주어진 것을 하기에도 벅찬 날들인데 다시 실험실로 나를 끌고 가는 그 어떤 이의 손은 과연 온전한 칭찬일까 다시 생각하게 되는 것, 작금의 자화상이다.


오늘 현장에서 만난, 지난 회사를 함께 다니다 종합편성채널로 자리를 옮긴 카메라 감독 A는 "방송기자 때려치우고 나와서 하는 게 카메라 촬영이냐"며 웃었다. "제가 좋아서 하는 것이죠"라고 둘러댔다. 뒷맛이 개운하지 않았다.


여전히 열심히 하루씩 쌓는다. 주어진 일 이상 하려고 애쓴다. 그러면서도 어떤 소문 속 선배처럼 스트레스에 암이 걸리거나 눈이 멀지 않도록 건강도 관리하기 위해 노력하고 내가 하는 게 무엇인지 잊지 않으려 가슴에는 고민도 많이 담는다.


어떤 문장들은 평생동안 가슴에 남는다. 내가 가진 몇 개 중 지금 당장 생각나는 것은 '주인의식은 주인이 아닌 자들에게 씌우는 일종의 의식이다'나 '내가 만드는 하루하루의 결과물은 내가 하루를 열심히 살았는지 보여주는 포트폴리오다'같은 것들이다. 지금 되새겨 보니 아무 쓸데없는 말들이다. 말은 말이니 말과 같이 제멋대로 뛰는 것.


회사로 돌아가며 몇 자 끄적여 본다. 들어가서 할 일이 아직 많다. 쓸쓸하고, 감정적 쓸쓸함보다 이성적으로 빈 공간이 커 보이는 오후. 겸손한 마음이고 언제나 많은 것들을 많은 이에게 감사하지만, 여전히 종로구, 토요에서 일요를 향하는 공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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