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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내 시대 소년 감성의 클래식에 대하여. 2014.11.01



신해철이 나에게 처음 왔을 때를 기억한다. 세대가 크게 차이났지만, 한창 청소년기가 시작할 무렵이고, 가끔씩 학원에 지나가는 S의 새빨간 볼이나 나를 놀려보거나 관심을 끌어 보려던 K의 장난들이 ‘쟤랑은, 물론 내가 신체접촉이란 것을 막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손 정도 잡고 길을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전이될 2차 성징의 첫 단계, J중학교 2학년 때 쯤이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학교꽁지나 다름없던 보습학원을 마치고 집에 가려던 참이었다. 학원에서 운행하는 차는, 마치 지하철 운행처럼 시간 관념이 철저했던 운전 아저씨의 출발 덕에 가끔씩 놓치기 일쑤였고 나는 멀지 않은 집까지 걸어가며 여기 저기서 호기심을 풀기도 했던 것 같다. 그중 S레코드 역시 나의 리스트 중 하나였다.

그곳에는 언제나 음악이 빵빵하게 나왔다. 스피커는 되게 큰데다 사방에 설치 돼 있었지만 귀가 아프다거나 혼잡하지 않았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이 될 때쯤 망해버렸던 그 레코드 가게는 주로 외국 음악을 틀었다.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헤비메탈부터, 요즘도 가끔씩 훌륭한 음악을 뽑아대는 최신팝, 이를테면 에미넴, 라디오 헤드부터 모짜르트의 오페라까지 총 망라된 서양음악사가 흐르는 곳이었다. 그럼에도 한국가요의 르네상스라 불릴만큼 한국음반 전시 코너는 전체의 3/4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당시 주 고객층이었던 중,고등학생이나 20대 청년들에게 잘 팔리거나 ‘명반’이라 칭해진 앨범들은 세로로 꽂히지 않고 가로 형태로 앨범 자켓이 전면에 내세워져 있었다. 거기에, 넥스트가 있었다. 정규 앨범도 아니었다. 'Live Concert Chapter 1’이었다.

한국 음악 자켓 스럽지 않아 들었다가, 사장 아저씨가 나에게 처음으로 말을 건냈던 순간이 바로 그 때였다. “그거 되게 좋아.” 물론, 나는 어릴 때부터 누구에게 쉽게 말을 붙이거나, 누가 말을 붙여도 말을 잘 잇지 않을 때가 많았지만 나도 모르게 되물었다, 그 때. “이거, 그룹 사운드 음악이에요?” 아저씨가 나오던 스피드 메탈을, 내가 S레코드를 출입하고는 처음으로 되게 작게 줄이곤 다른 음악으로 재빨리 바꾸더니 말을 이었다. ‘빠바바바바바바바바바바바바밤바바’로 시작했던 그 음악은 예전에도 어디에서 들어 본 적 있는 것이었다. 아빠의 오래된 엘란트라에서 였을까, 아니면 그보다 더 오래됐던 외할머니댁 텔레비전 수상기에서였을까. 후에 알았지만 바로 그 음악, 무한궤도의 ‘그대에게’는 그때에도 나온지 10년 이상된 노래였다. 1절이 끝나갈 때쯤 아저씨가 세 마디만을 더 붙이던 것이 기억난다. “이 노래 어디서 들어봤지? 이거 만든 사람 그룹 사운드 앨범이야. 2천 원 깎아준다.”

한 달 용돈 오만 원도 안되어, 오백원짜리 오락실 노래방도 벌벌 떨 때였지만 왠지 모르는 끌림에 그 앨범을 냉큼 사 집으로 뛰어 왔던게 기억난다. 부지런히 비닐을 벗기고 CD를 데크에 올렸는데 노래 소리가 작아 녹음이나 CD가 불량이 아닌가 레코드 가게로 다시 뛰어갔던 것도 생각난다. 후에 알았지만 그 당시 라이브 공연 녹음의 한계였더라. 여튼 그것이 신해철과의 첫 조우였다.

이 후 넥스트 음악과 신해철의 음악, 많이 들었다. 혹자는 시체말로 ‘중2병 감성이 제대로 나왔다’고 트위터에 올리기도 했지만, 우리가 21세기 들어 ‘중2병’과 ‘오글거린다’는 표현을 얻은 대신 잃은 많은 것들에 비하면 신해철의 탐구정신과 고뇌는 비교의 범주가 아닐 것이다.

길게 쓸 것 없는 블로그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은 ‘해에게서 소년에게’ 그리고 ‘나에게 쓰는 편지’다. ‘해에게서 소년에게’는 고등학생 때, ‘나에게 쓰는 편지’는 대학교 1, 2학년 때 정말 많이 불렀다. 부르고 울었다. 감동이 온다기 보다, ‘가사 속의 나 닮은 내가 나에게 온다’ 정도의 느낌이었던 것 같다. 가요가 예술이라면 이런 가요 아닐까 싶었던 가요. 신해철의 가요들.

마지막으로 신해철을 본 것은 PR업무 대행으로, 전직 대통령 N이 만든 비영리 재단에서 일할 때였다. 나는 단기 인턴식으로 가서 일을 했는데 전직 대통령 N의 추모행사에서 노래 부르는 모습과 무대 뒤의 모습을 잠시 봤던 것. 예능인이 정치 이야기를 하기 쉽지 않은 대한민국에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뱉던, 물론 실제로 봤을 때는 아저씨같은 모습이었지만 나는 ‘소년 감성의 우상에 대한 존경'이 두 눈에 씌어 있었을 테니까, 그가 대단해 보였다.

이제, 살아있는 순간 그 어디에서도, 그를 볼 수 없겠지만 신해철을 그리워 할 것이다. 같은 세대를 살면서 가슴으로 느꼈던 어른들에 비해 내가 느끼는 순간들은 되게 미미할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그 그리움의 크기가 작다고 누구도 말할 수는 없을테니까. ‘소년아. 저 모든 별들은, 너보다 먼저 떠난 사람들이 흘린 눈물이란다. 세상을 알게 된 두려움에 흘린 저 눈물이 이 다음에 올 사람들을 인도하고 있는 것이지. (N.EX.T 노래 ‘해에게서 소년에게’ 중에서)’ 나를 인도하고 있는 빛에게, 감사하다.

*글에, 신해철 씨, 가수 신해철이라고 일일이 쓰기 어려워 이름으로 통일시켰음을 알려드립니다.


추신, 진심 울고 싶다 울고 싶다 생각하가 퍽하고 울어 버렸다. 제 나이가 되서 떠났어도 펑펑 울었을텐데 이렇게 갑자기 가버려서 정말 당황하고 아무 생각도 들지 않다가 친구 K가 발인하는 장례식장에 취재갔다는 말을 듣고 실감나서, 울음이 왕하고 터져 버렸다. 해철 씨, 행복했나요. 사는 우리는 더 잘 살게요. 음악해줘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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