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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영화 곡성 후기 2016.05.15

어떤 이는 강이라고 했지만 어떤 이는 죽음이라 했다.

곡소리가 울려 빗소리를 뚫은 자리에는

상처받은 영혼들이 구렁이처럼 얽혀있을 뿐이었다.

영화 속 그 곡성은 그런 곡성이었다.

잊혀질 준비가 다 된 수몰 직전의 세기말 동네.


외지인은 고요를 향해 꾸물거리는 환형環形을 던졌다.

보이지 않았다, 그것이 어디에 닿는지 누구를 만나는지.

그럼에도 그가 강가에서 사라졌음은 그것이 분명 무엇을 만났기 때문이리라.

그가 사라진 강가에 종구의 딸이 남았다, 그것도 의젓한 얼굴로.

외려 겁에 질린 것은 종구였다. 어른이 애처럼 애에게 빌고 있었다.


어쩌면 아이의 그림은 혼령이 아닌 본인의 것일테다.

외지인이 덮친 것이 바늘을 목 끝까지 삼킨 것이 오직 마을 어른들 뿐이랴.

깊은 자락에서 찢긴 상처가 외지인의 방에 쌓인 것이리라.

잃었던 실내화는 그렇게 모습을 드러냈다.


미스테리 영화인 줄 알았던 영화는

코믹이 됐다 공포가 됐다 다시 종교가 됐다 결국 사랑이 됐다.

준구는 딸을, 이삼은 외지인 속의 예수를, 무명은 마을을, 일광은 외지인을.

시를 읽은 적 있다, 창조주가 인간의 형상을 지녔을 것이라는 관념을 깨라는.

마치 그것 같았다.

닭은 세번 울지 못했고 모두는 결국 모든 것을 잃었다.

물론 여전히 시간은 강물과 흐르고 사건은 사건 번호 속으로 사라졌을테다.


시작점에서 할매가 말했다.

“밥 묵고 가라”고. “어차피 죽은 놈 늦게 가도 안 살아난다”고.

어쩌면 영화는 모두 사라지고 나서 시작했는지 모른다.

관객이야 말로 미끼를 깊게 삼켜버린 것인지.

그저 살금 물고

탐貪해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모른 채 스크린에 깊이 들어간 것이다.


지리산과 무등산, 조계산과 봉두산 사이에 어렴풋했던

골짜기 사이에 짧은 낮을 잡고 견디던 많은 사람들이

이제 편안하길. 현실이 아닌 것들에 마음 지치지 않았으면 했다.

실은 곡성谷城은 그런 곳이니.

마음의 유배는 내려놓고 그저 영화를 즐기길 바란다.

굳이, 나홍진 감독이 군郡과 상의 끝에 한자 병기를 했는지 이해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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