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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동아 마라톤 풀코스와 열가지 단상 2013.03.19

1.

삶은 꼭 약속으로만 엮여있지 않다. 운명이 있다면 그것은 찾아가야 하는 것, 결코 오지 않아.


2.

잠이 오질 않는다. 밤새 송푸름의 '어떤가요'를 들었다. 내일이면 맥박지수가 한동안 그치지 않을 만큼 올라가, 정상 범위 안에서의 저혈압이긴 하지만, '보통 누구들'만큼의 열을 느낄 것을 생각하니 숨이 벌써부터 턱턱 막힌다. 어디에선가 본 에너지 수율이 떠올라 그 동안 먹던 닭가슴살도 끊고 쌀밥과 식빵을 먹는다. 식빵 냄새를 맡으니 어릴 적 거닐던 보리밭과 고구마밭이 떠올랐다. 보리는 잔잔한 바람에도 쉽게 춤을 추는 녀석이었고 고구마는 아무리 힘을 줘 세게 머리채를 흔들어도, '엄마, 엄마, 나 안갈테요. 나 계속 엄마 품이 있을라요. 이것이 뭐랑가요.'하며 양토를 끌어안은 무식한 숫처녀같은 얼굴들이었다. 굳이 이 기억이 내게 떠오른 것은 아빠와 함께 한 기억들을 하나, 또 하나씩 요즘들어 떠올리는 끝에 들어간 열두살의 기억일테다.


아빠는 삼교대 근무를 하셨다. 그 회사는 1년 내내 가동을 멈추는 일이 없는 회사였다. 소위 '기름집'이라는 이름으로 저녁에도 불이 꺼질 줄 몰랐던, 공업단지 중에서도 가장 잘 나가던 그 회사는 아빠가 근무하던 30년 사이에만 이름을 서너번 바꿨다. 더 비싼 가격에, 더 좋은 자본에 의해 움직이던 아빠의 회사는 결국 굴지의 외국자본과 국내 대기업 자본이 합쳐진 이름의 완성체가 됐고 기름을 실은 배는 속속 항구로 들어왔다. 파이프가, 성교의 시작처럼, 배와 맞닿아 그 끈적이고 검은 것들이 탱크로리를 채우는 동안 아빠의 피곤과 피들도 거기에 섞여있을테였다. 물론 아빠는,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검은 기름을 몸이나 얼굴에 묻힐 필요까지는 없이 컴퓨터와 싸우고 있었겠지만 말이다. 하루의 여덟 시간, 운전해서 공장의 중심부까지 또 한 시간씩, 왕복까지 열 시간을 아빠는 주야비비로 젊은 날을 버텼을거야. 나와 내 동생에게 '기름 진' 밥을 먹여주기 위해서.


그래서 아빠와 함께 보내던 어린 시절들의 기억은 하나 하나 더 소중했다. 회사에서 운영해줬던 주말 농장에는 여러가지 채소를 심었고 토마토가 익기도 전에 똑 떼어 먹어보는 장난꾸러기였다. 아빠가 삽으로 흙을 살살 긁어주면 고구마 머리가 보이기 시작했는데 이게 마치 달걀같아서 주먹으로 꿍하고 내리쳐보고 울먹거리기도 했었던 것들도 기억나는 것을 보니 소중하긴 소중했나보다 싶다. 생 채소를 잘 먹지 못하던 그 때, 내가 생고구마를 처음 먹었던 느낌, 모두 하나 하나 감사한 시작들이니까.


3.

잠결에 일어나보니 집안이 가득 야채 가게의 냄새로 차있었다. 홀로 사는 동안 식을 거르지 않으려고 간편하지만 건강하게 먹고 지내려고 사 둔 바나나, 고구마, 양파, 토마토 쥬스의 냄새가 났다. 냄새를 맡으니 다시 배가 고프다. 한 입을 배어 물고 다시 머리를 뉘어 나의 달리기에 대해 생각해본다. 나는 그리 운동신경이 잡힌 소년이 아녔다. 앉아서 책을 보거나 생각을 하거나 그것들을 실행시키는데 골몰했지, 축구에서 몇 골을 넣었고 농구에서는 어떤 기술을 썼으며 야구에서 어떤 포지션에 있었는지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으니 말이다. 나에게 운동은 '참다참다 한타'였다. 오랫동안 했던 검도는, 물론 근력운동이나 반복훈련도 많이 했지만, 한 칼에 결판이 나는 운동이었고 수영 또한 평소에는 물장구 치듯 놀다가 대회가 있을 때만 전력을 다해 5분 내에 결판을 내면 됐기 때문에 굳이 평소에 운동을 즐기진 않았다. 그런 내가 달리기를 하고, 달리기에 빠지고, 이제는 결코 안하려고 했던, 못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마라톤 풀코스를 하겠다고 옷까지 준비해두고 잠을 설치고 있다. 무언가, 나에 대한 변화를 느껴서이기도 하다. 삶에 대한 태도건, 체력에 대한 고민이든, 무엇이든. 어쨌거나 확실한 것은 나는 독한 녀석인 것은 맞아.


알람이 울린다. 가자.


4.

지하철이 덜컹인다. 내릴 때가 되니 모두 한번에 기상한다. 이 모든 사람들이 '고통을 겪으러' 간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치가 떨린다. 이가 덜덜거리는 걱정이 무척 오랜만이네, 반가워. 해치마당 앞에서 일행을 만나서야 떨리던 턱이 그걸 멈춘다. 역시, 사람이 제일이야. 배번을 달고, 칩을 묶고, 선글라스를 꽂으며 스트레칭을 시작한다. 머리 끝에서부터 발바닥 아래까지, 모든 근육에 '자, 이제 너네들은 피 맛을 보게 될거야.'라며 조각조각 제 상태를 체크한다. 프로페셔널 선수들도 풀코스를 달리기까지 10년이 걸린다고 했다. 10km 이상을 달려본 적이 없어 대회를 신청하고 나서야 12km씩 두번 달리고 바로 족저근막 염증 증세 때문에 쉬기 시작한 것으로 나의 풀코스 훈련은 끝난 상태였고 그 이후 단 한번 9km를 달렸을 뿐이었다. 그래도 가야겠어, 난 독한 녀석이니까. 아, 독한 녀석 이전에 여린 놈.







5.

내 주위에 달리는 사람이 많이 늘어났고 기량이 출중한 사람도 많아지면서 동아마라톤 접수자들도 계속 늘어갔다. 나는 당연히 접수하지 않고 있었다, 내 실력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하지만 그 무렵 내 마음에는 여러 종류의 고통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박치기를 하고 있었다. 사람이면 사람, 사랑이면 사랑, 고독이면 고독, 글이면 글, 일이면 일. 하나만 닥쳐도 힘든 판국에 여러 문제들이 짜임새도 없이 섞이다보니 나는 말 그대로 앓아 누웠다. 사흘 밤낮이 넘게 침대에서 나오지 못하고 우울한 노래와 글씨들만 나를 감싸고 있었다. 이미 신청한 아디다스 대회, 끊어놓은 수영강습도 무의미하게 지나치던 어떤 날, 드디어 나는 일어나 주위의 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었다. 사람들은 말했고 나는 들었으며, 한시적으로 열린 동아마라톤 추가모집도 이때 알게 됐었다. 연습도, 실력도, 용기도 없었지만 다시 힘을 넣고 싶었다. 다리가 아닌 마음에.


6.

10km 지점을 통과했는데도 아직 지치지 않은 것을 보니 날씨만큼이나 나도 들떴나보다. 오랜만에 뛰는데 5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게다가 아직 힘도 충분한 느낌, 이제부터는 달려보지 않은 길을 써보지 않은 체력으로 앞을 지르는 일만 남았다. 대회를 나오면서, 물론 하프 코스도 뛰어본 적 없었기에, 간식과 스펀지 부스가 있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 인터넷 동호회 H의 회원님께서 적어 준 비책대로 무릎과 목덜미를 닦아본다. 상쾌하다. 어린 시절 보리밭을 가르던 그 냄새가 나는 듯 하다. 이온음료와 쵸코파이, 바나나도 많지만 굳이 먹진 않는다. 쵸코파이는 텁텁할 것 같고 바나나는 평소에 많이 먹으니 침이 말라갈 때 먹으면 물릴 것만 같아서, 아직 배가 덜 고팠나보다. 하프 마크가 나오고 이제 몸 이곳 저곳에서 신호가 온다. 허벅지는 검도를 할 때부터 워낙 튼튼해 아무 느낌도 없지만 장딴지 뒷근육에서 찌릿찌릿한 느낌과  발바닥 족저근막의 저릿한 것이 머리 속을 하얗게 만든다. 모로 가도 종합운동장까지만 걷고 뛰고 기어서라도 가겠다 했지만 아예 발을 쓰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가정은, 대회를 신청한 각오 그 어디에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대로 뛰다가 발이 아파 주저앉으면 어떻게 하지. 발 안쪽이 최대한 닿지 않게 발구름을 해본다. 1km쯤 갔을까, 조금 괜찮아진 듯한 느낌에 편한 발걸음으로 뛰어도 느낌이 나쁘지 않다. 누구에게나 한번은 신호가 온다면, 그게 이번 신호였으면 좋겠다. 다리에 힘은 없지만 못달릴만큼은 아니다. 하지만 걷고 싶다, 잠깐만 걸을까? 저 코너가 나와 돌 때까지만 걸을까? 아니야, 저 코너까지만 뛰어보자.


7.

오키나와로 마라톤을 다녀온 친구 L은 달리면서 응원객들이 주는 여러가지를 먹었다고 했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주머니 한 분은, 생면부지의, 나를 잡고 토마토 세 알을 쥐어주었다. 아들같다했다. 어떤 아저씨는 "저, 박카스 그거 한 병만 주시면 안돼요?"라는 내 울상에 "이거, 한 병 더 줄테니까 뛰다가 가슴팍이나 등짝에 홍천이라고 써져있는 아저씨 아무나 줘라이."라며 손수 한 병을 따줬다. 잠실대교 올라가기 직전에, 달리면서 건포도를 한 줌 먹으려다 놓친 나를 보고, "저 분, 건포도!"를 외친 자원봉사학생이, 들고 달려 건내 준 종이컵에 든 건포도 몇 알이 그렇게 감동스럽던지. 내가 낸 돈은 겨우 삼사만 원일 뿐인데, 받은 것은 이렇게 많은지. 대교 위를 내려오면서 시작된 내리막길에서, 터벅 터벅 움직일 수 없는 걸음에 힘을 주려 나와있는 전국의 많은 마라톤 친구들에 울컥해 눈물이 날 뻔 했다.


8.

함께 달린 친구들 여섯명이서 계획한 시간은 6시간이었다. 그 중 하프 코스를 뛰어본 사람도 셋 뿐이었으며 그들조차도 그 하프 코스를 뛰고 힘들어 죽으려 했다. 나는 그들 중에서도 느린 축이었다. 나는 완주만 해도 다행이라 생각했다. 39km를 지날 때 손목시계에서도 비프음이 울렸다, 4시간을 알린다. 남은 거리는 3.195km다. 조금 전 달린 38km에서 39km 구간에서의 평균 속도는 10km/시 였다. 30km 지점까지 5.45km/시 에 달린 것을 생각하면 형편없이 쳐졌고, '마라톤에서 왜 아저씨들이 벽을 밀고 계신지 이제 알겠다'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길가에 세워진 플라타너스를 있는 힘껏 밀며 장딴지를 자극시켰다. 해본 적은 없지만, 장딴지에 실톱을 가져다 대면 이런 느낌일까. 시리면서 찢어지는 느낌, 하지만 달릴 기분은 난다. 다시, 마지막 힘을 내보자.


9.

최종 기록은 4시간 20분, 달리지 않은 친구들이 와서 '너 정말 대단하다'고 말해줬다. 처음 뛰어보는 거리와 시간이고 남들의 기록도 본 적 없기 때문에 잘 달린 것인지 못 달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쓰러질만큼 탈진하지도, 죽을만큼 고통스럽지도 않았지만 마라톤은 끝났다. 전광판을 통해 아직 달리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보였다. 올림픽 주경기장이 이렇게 좁았던가. 아니면 달리고 있는 우리가 이렇게 컸던가. 아마, 자고 일어나면 고통스럽겠지. 쓰지 않던 근육을 처음 썼던 강원도 화천의 유격장의 텐트에서만큼 일어나기 싫을 것이다. CRP 수치도 올라가 한동안 술도 안마시겠지. 나는 이제 풀코스 완주자다. 그러나 달라지는 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하나 더 생각하게 되는 것은, 나 외의 것들에 알아가고 싶었던 그 관심만큼 나 자신에 대해서도 더 많이 알고 싶다는 것. 나는, 독하다. 좋은 쪽으로 더 독했으면 좋겠다.







10.

40km 마크가 눈 앞에 보인다. 이제 곧 50m만 더 가면 저 표지판에 하이파이브도 할 수 있을 거리다. 14km 정도 지났을 때 다짐한 것이 있었다. '내가 30km를 지나서 40km까지 간다면 거기서는 포기할 수도 없는 거리가 되겠지. 그 때가 돼 내가 단 하나의 소원을 말할 수 있게 된다면 무엇을 바라야 할까'. 40km 마크에 이제 닿을만큼 가까워졌는데 작년에 돌아가신 엄마의 아빠가 생각났다. 나를 쌀집 자전거에 실어 여기저기 시장 구경을 시켜주시던 그 손이 너무 그리워 40km 마크에 하이파이브를 하고서 눈물이 쉴 새 없이 터져 흘렀다. '이 완주의 메달을 받으면 꼭 현충원 팻말에 걸리라. 그리고 아빠, 엄마, 당신들에게 적어도 부끄럽진 않게 살리라.' 41km 마크는 결국 보지 못했다. 그 때까지 울음 범벅으로 달렸던 것을 아는 사람은 없다. 기름으로 나 먹인 우리 아빠, 그리고 엄마와 내 사람들. 이제 내 복으로 먹게 해드려야지. 이게, 내 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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