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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구수환의 사람냄새 1 2011.03.24

'울지마 톤즈'를 찍은 구수환 PD를 만났다. 보았다. 악수를 나누었다.

실은 가는 길이 참 멀었다. 수업은 열두시 십오분 정시에 끝났고 나 또한 그리 영악한 학생은 아니었기에 중간에 뛰쳐나올 생각은 추호도 하지 못했다. 다만 그와의 거리가 조금 멀었을 뿐. 만나기로 한 시간은 한시 이십분이어서 어플리케이션 '하철'군의 도움을 받아보니 크게 늦은 감은 없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

지하철에 와서야 지갑이 사라졌음을 깨달았다. 가만히 앉아 호주머니와 옷을 온통 뒤지다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어버렸다. 아직 가을은 아니었다. 어디서부터 나를 떠난 것인지 되돌아 보다가 결국 집으로 돌아가보기로. 없어도 찾을 틈이 없었다. 나는 '갑'이었지만 결국 많은 '갑'들 중 하나일 뿐이었으므로 '을'은 생각보다 얼마든지 선택권이 있었다.  게다가 그는 업계에서 영향력있는 '갑'이기도 했으니까. 마음은 조급해졌다.

집까지 올라갈 버스비도 부족했다. 겨우 800원이 없어 어느 친구에게 백오십원을 빌려 집에 도달했다. 없으면 옆에 사는 친구에게라도 빌려야겠다는 다급함까지. 신발을 내팽개치고 집열쇠를 급히 들었다.9호선 환승구는 길기도 길었다. 깊기도 마찬가지였다. 환승게이트를 지나 뛰고 또 뛰었다. 두번의 환승 모두 환상적이었다. 옷이 문틈에 낄 뻔했으니까. 온 몸이 땀범벅이 되기 시작했다. 두 정거장이 지날 무렵 조금씩 겁이 나기 시작했다. 어떤 질문이 훌륭한 질문일까. 실은 훌륭한 질문을 하기 위해서 만나야한다고 생각하진 않았으나 인간 심리의 기본 요소인 자존감 정도는 챙기고 싶어 준비한 질문과 자료를 탐독하기 시작했다.

실은 그를 만나기 전, 그가 만든 프로그램을 열댓개는 더 보고 그가 지은 책도 봤으며 관련기사와 수상소식, KBS 내에서 그가 하는 일 등을 조사했다. 신문사, 부산대 언론사 부대신문, 후배들이 나를 보면 깜짝 놀랄 판이었다. 들인 시간은 그의 배의 배 정도씩이나 되니까. 하지만 나는 부끄럽게 만나기 싫었다. 내가 좋아하는 그였고 또 언제 다시 만나게 될지 모르는 그였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쓴 기사와 다른 기사'가 아니라 '여기에서 나만이 쓸 수 있는 기사'를 쓰고 싶은 욕망도 그와 더불었는지 모르는 일이다.

그는 이미 업계의 입지전적을 많이 남긴, 이를테면 스타급 PD였다. 추종자들도 많았고 그에게서 감동을 받은 사람들은 더욱 많았다. 나는 둘 다였다. 감동을 받아따르는 것이 아니라 따르게 되면서부터 감동한 케이스였고 수많은 PD 지망생들 중 하나는 아니었지만 언제고 만나고 싶은 마음이 들었었다. 울지마 톤즈를 보고 내가 굳이 '천주교신자'여서는 결코 아니었다.

눈이 강렬했던 그는 그러나 대개의 경우 편안한 말투로 대화에 응했다. 실은 묻지 않은 내용도 많이 말해줘 때로는 나를 조금 당황하게 그러나 너무 고마워하게 만들어주었다. 두시 오십분에 출장을 가야한다는 그와 여섯시 즈음에 약속이 있던 나는 그러나 다섯시가 다 되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실은 친구가 많이 없어, 이 일을 해보면 누구나 알지"라고 말하는 그의 눈에 다시금 내 모습이 비추어 그랬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지금 타지에 홀로 있기 때문에, 친구들도 먼 곳에 있고 친해질 사람 하나 없는 황량한 터에 있는 나이기 때문에 동질감이나 연민을 느껴서일지도 모른다 생각하고 그의 눈을 다시 들여다 보니 날카로웠던 그의 눈매 끝이 왠지 둥그스름해져서 황소처럼 툼벙하게 보였다.

그는 그런 편안한 사람이었다. 사람을 만나고 사람과 이야기하고 사람을 내보냄으로서 사람을 살리는 사람, 그런 구수환이 거기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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