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회자화사일기'에 해당되는 글 11건

  1. 일, 하루째. 일보다 눈. 2 2012.07.21

이 글을 쓰겠다 마음먹은지, 만 하루가 지나 아쉬움만 쌓여간다. 조금 전까지 나는 서울 종로구 모 처에서 컴퓨터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어디에서 일하는지는, 또 다른 후속 글에게서 나타나겠지만 오늘의 업무는 주로 배우고 배우고 쳐다보는 것이었다. 차마 '익혔다.'는 말을 쏟지 않는 것은 익을만큼 제대로 된 일을 하진 못했기 때문이리라. 출근 첫 날부터 훌쩍거리는 코를 부여잡고 팀장(님)을 비롯 많은 직원(분)들에게 인사드리는 것에 굵고 긴 소개, 시체말로 오리엔테이션,를 받았다.

 

나의 주 업무는 하나의 기업이 가지고 있는 아이덴티티를 사람들이 더 알기 쉽도록 허상의 공간 위에 흩나열하는 것, 쉽게 말해 온라인 홍보와 마케팅이다. 그럼 홍보물이나 마케팅꺼리는 어디에서 구하느냐면, 이것 역시 내가 하나씩 짓고 빻고 삶아 만들게 되었다. 다양한 경험을 앉은 자리에서 하는 것, 좋고도 귀찮지만 다시 섬세한 일상이 온다 하니 기분은 좋았지만 심장 사이에 조금 느슨해져있던 조임끈을 슬며시 당기게 되었다.

 

오랫동안 컴퓨터를 보아오지 않던 눈이라 컴퓨터로 하는 업무가 여간 쉽다고만 느껴질 수는 없었다. 눈이 뻑뻑하고 가끔은 시렸다. 다 업이다. 이만한 인턴업무 없는 것을, 지금 옆에서 다른 인턴하는 친구나 형이나 동생을 보면서 느껴간다. 난, 반바지 반팔입고 출근하거든.

 

일을 마치고 광화문 스타벅스까지 슬그머니, 그리고 조금 빠른 템포로 내려왔다. 친구가 일 마칠 때까지 아메리카노 한 잔과 스콘 중 온도로 데운 것 하나를 시켜 시간을 묻혔다. 겨우 하루가 지났을 뿐이며 1Q84 2권은 이제 겨우 제 11장 '균형 그 자체가 선이다'를 넘기고 있었다. 머릿속에 아오마메는 이상형인 '뮬란'과 매우 맞닿아있었다. 고독하고 쓸쓸한, 그리고 쿨하며 지적인 여자를 보면 언제나 왜 그녀가 떠오르는지.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열기를 빨아 컵 바깥쪽에 땀으로 그 영역을 표시했고 나는 맞지 않는 모자를 머리 위에 살포시 얹은 남자 파트너에게 무성의한 말투로 "얼음 좀, 더. 좀 많이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자리에 돌아와 앉는데 섬뜻함. 난 어느새 지친 눈의, 충혈된 뇌세포로 그에게 말을 던지진 않았을까.

 

아이패드를 펴고 그간의 이 일을 지나친 인턴들의 블로그를 찾아보았다. 좋은 기억, 자아도취, 정말 힘든 끝에 얻은 소중한 감상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성찰. 모두 제각각이다. 안다, 삶은 케이스 바이 케이스고 이것조차 어떤 면은 내 것이 아닌 부모님 혹은 그 이상의 조상님들에게서 왔다는 것을. 그래도 나는 나의 나를 이 생활에서 찾아보기로 했다. 깊은 감정동요나 허세, 징징거림이나 자아도취없이 최대한의 덤덤함으로 이 일기를 기재코자 한다.

 

그런 마음을 다잡은 후에서야 나는 얼음도 음료도 없는, 사이렌의 얼굴을 한, 톨 사이즈 아이스잔에 꽂힌 청록의 빨대를 두어번 씹어물고 다시 세차게 뱉었다. 이제서야 나는 전장에 섰다. 멀리 이순신 동상에 어둠을 알리는 빛이 들어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