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이의 팔, 2012년 2월, NEX-5>

1.
집 앞 명성공인중개사무소 옆을 지날 때의 일이다. 사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에서부터 약 이십분 전의 일이다. 이십일 전으로 돌아갔으면 하고 이 글을 쓴다. 문득 내가 그 쪽으로 다가간 것은 집에서 가지고 나온 종이잡지를 종량제 쓰레기 봉지에 몰래 꽂으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흰색으로 반짝거리던 그 봉지는 딱 보기에도 빈 공간이 많아보였다. 바람이 잔 오늘 아치이어서 비닐은 안 묶은 부분을 중심으로 계속 펄럭거리면서 나를 부르고 있었다. 끄트머리를 잡고 봉지를 크게 펼쳤다. 나는 소스라치고 말았다. 시체가, 있었다. 경직된 눈이었다.

코리아 숏헤어(이하 코숏)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 고양이는 어느 학교나 아파트 주위에 많이 있었다. 녀석들은 주로 홀로 다녔고 새끼들은 굶기거나 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사람들은 그 녀석들을 데려다 기르기도 했다. 처음에는 아장거리는 녀석에게 밥도 주고 우리도 주며 정성스럽게 대했을 것이다. 녀석들은 사람과 닮되 모난 얼굴을 하지 않아서 휘둥그런 눈을 몇 번 깜박거리기만 해도 요염했을테니까. 그러다가 너무 덩치가 커지거나 말썽을 피워서 어지르거나  싶으면 집 밖으로 내몰거나 남에게 주거나, 혹은 이렇게 만들어버렸다. 그것이, 사람이었다.

녀석은 전체적으로 갈색빛을 띄되 흰 배를 가지고 있었다. 한쪽눈이 절반쯤 열려있었다. 앞다리는 두개다 심한 사후경직으로 평생동안 할 '앞으로 나란히'를 하고 있었다. 심각한 것은 그때문만은 아니었다. 죽이고서 했는지 그렇게 죽였는지 알 수 없지만, 머리에서 목을 잇는 척수와 양쪽 볼이 절개되어 있었다. 조금 잔인하게 생각하자면 유리먹인 낚시줄 따위로 고양이를 오랫동안 걸어두면 그런 자국이 생길 수 있으려나, 지금와서 생각한다, 했지만 그렇게 치부해버리기엔 상흔이 깊었다. 오래 전 생물시간에 배웠던 소뇌나 연수, 뇌교같은 것들이 떠올랐다.

경찰서에 전화를 해야할까, 동물보호복지센터나 카라KARA에 연락을 해야할까 고민을 하다가 결국 모처에 연락을 했다. "여기, 제가 본게 그냥 로드킬이나 여러 이유로 죽은 고양이면 모르겠는데요. 이건 좀 심한 것 같아서 연락드려봤어요."로 시작된 아주 짧은 통화는 "아, 네. 사람이 문제겠죠. 네, 수고하세요."로 끝나버렸다. 모든 감흥이 사라진 자리에서 오직 나와 죽은 그를 자극하는 것은 아까와 마찬가지의 휘날리는 흰봉지의 끄트머리, 그 뿐이었다.

사람들은 잔인하다. 말못하는 녀석을 (사거나 팔거나 둥지에서 가져오거나 얻는 등, 나는 그 행동을 '사거나 파는게 아니라 입양, 분양'이라고 표현해가면서 생명의 오갈 곳을 옮겨가는 것 조차 꼴보기 싫지만) 데려다 밥을 주겠다며, 사랑을 주겠다며 행동하는 꼴은 일만 아니시켰지 광대를 부리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한참을 생각했다. 물론, 집에서 정성스레 반려동물을 기르는 사람들에게도 포함되기도 혹은 아니기도 한 이야기다. 실은 굶어죽거나 도시공간을 뛰어다니다 차에 치어 죽거나 하는 것이 그들에게 더 '동물적'일지도 모르겠다. '인간적'으로 대하는 순간 그 모든 순리가 깨지기 시작했지만 말이다.

뒤돌아 갈 길을 향했다. 눈물이 울컥했지만 참았다. 거자필반이라고, 다음 생에는 나나 누구라도 고양이로 태어나 그런 꼴을 당해도 그저 겪고 눈을 감아야할 것 같아서, 사람인게 싫어졌다.

2.
사람들은 알아야 한다. 사람은 영원히 누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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