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만, 2012년 2월, NEX-5>



김병만을 만났다. 먼발치가 아니었다. 스스로 공식적으로 밝힌 키가 너무 친근해서 더 가깝게 느껴지는 것도 맞을 것이었다. 그는 단단했고 겸손했으며 소심했고 그러나 사색이 곁들여진 남자였다. 전라북도 완주, 지방에서도 '촌'이라고 부르는 곳에서 나고자란 순박한 말 속에는 김어준이 그의 책에서 밝힌 '무학의 통찰'과 유사한 '무학의 진정'이 담겼다.

자꾸 마이크를 손에서 손으로 옮긴다. 한 손에 얼마나 잡고 있나 쓸 데 없는 궁금이 생겨서 초를 재봤다. 겨우 30초를 못 버틴다. 무대 위에서 잘만 하던 그가 겨우 20살을 넘긴 대학 새내기 서른 명 앞에서 얼어있다. "자기가 잘하는 것게 있으면 그게 진짜 잘하는 것 맞는지, 거기에 평생을 걸 수 있는지 잘 생각해보세요. 아니면 몸으로 느껴봐도 되고. 젊어서 이삼년 아까워 하지 마세요. 십년 뒤에 이삼십년으로 돌아올거에요." 목소리마저 떨린다. 자기는 이걸 행사라고 생각하면 안 왔을거라면서, "깊이있는 친구는 어떻게 사귀어야 하나요?"라는 한 남학생의 질문에 무대 위에서 바로 입을 떼지 않고 잠시 생각을 담금질하는데 그 모습이 더 프로같아 보인다.

종편에 갔다. 몰랐다. 그에게 관심은 있었지만 종편에 관심이 없어서 전혀 몰랐다. 몇 몇은 놀라는 눈초리를 했다. 하지만 그의 진심에는 모두 다 탄성을 터트렸다. 차라리 그 이야기가 없었으면 했다, 라고 생각하다가 '종편행을 택한 모두가 미디어에 대한 관념과 재력을 저울질한 것은 아니구나.'라 알게 되었다. '악법도 법이라면 지키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다가 법을 만드는 사람들에 대한 그리고 법이라는 테두리를 둔 것 자체에 대해서 보고 듣고 배웠던 2011년 1학기에 이진경 선생에게 듣던 강의의 일부가 떠올랐다. 철학은 참 가까운 곳에 있었다.

김병만이 요즘을 사는 사람이라면 벌어둔 돈, 쌓은 명예를 뒤로 하고 노년에는 완주의 본가로 돌아가 소담스레 삶을 마무리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끝이 어떻든간에 제발이지 '잘난, 촌놈의 된 성공기'를 마무리짓길 바란다. 나름대로, 응원한다.


*이 글은 럽젠에 실릴 오픈특강 카테고리 '김병만의 이야기'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다만 웹진의 편집방향과 전혀 무관하며 저의 견해와만 연관되어 있음을 미리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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