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 텀블러 그리고 골드카드, 2012년 1월, NEX-5>


집에서 나와 사는 주제에 스타벅스는 언제나 비싼 '허비'인 줄 알았다.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적어도 지난 해 크리스마스 직전까지는. 가봤자 누군가와의 사업성 미팅을 하거나 가벼운 시간을 이야기로 보낼 때 주로 이 공간을 빌리거나 '훔쳤다'. 그러나 요즘의 나는 참 다르다. 매일같은 시간을 여기서 보낸다. 커피 한 잔을 시키거나 혹은 시키지 않고도 나무로 된 선반을 차지하고서 10시간을 때운 적도 있다. 여러가지 이유에서다.

1.
지난 해 마음이 허약해지는 시기를 겪고서 무엇도 탐하지 않는 무물욕의 상태가 약 2주간 지속되었다. 무물욕이 좋을 것 같지? 대략 결핍의 계절이라 생각하는 분초시일들로 채워졌던 날들에 나는 피부도 거칠어지고 눈도 움푹하게 들어가고 나름대로 날렵했던 콧등에는 자잘한 각질이 돋기 시작했다. 어차피 사라질 송장이지않느냐며 몇 일간 늦잠을 무지하게 자기도 했다. 살은, 우연치 않게 빠지기 시작했었다.


2.
아주 미묘한 순간에, 스타벅스 다이어리를 탐하기 시작했다, 다시 무언가에 대한 욕심이 생긴거지. 한 잔에 스티커 하나, 열일곱장을 모으는데 겨우 커피 다섯잔을 마셨다. 무작정, 평소에 다른 곳에서 잘 마시는 라떼나 아메리카노는 제외하고 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음료에 대해 2분간 설명을 듣고 그 것을 시켰다. 비쌌다. 나와서 사는 것은, 어떤 것이냐 하면 우유 1.2L가 이백원 더 싼 마트까지 십분을 더 걸어가던, 그런 삶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카인을 얻고 싶은 사람들이 멍한 상태로 지나가던 행인을 공격할 때 그랬을까, 그런 가사상태로 나는 당이 높은 그 것들을 하나씩 기억하기 시작했다. 스티커 모으기는 더 쉬웠다. 주위에서 주거나 앞에 주문한 사람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달라고 했다가 그냥 놓고가는 경우, 놓치지 않고 가져가 붙이기 시작했다. 금새 다이어리를 얻었고 커피 맛도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해버렸다.

3.
그리고 스타벅스 카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엑스트라 추가 무료, 뻔한 상술이었다. 샷 추가, 시럽 추가에 원가를 고려하지 않고 판매이익을 생각한다 해도 백원, 이백원 수준일테고 이 백원, 이백원으로 단골을 묶겠다는 심산은 당혹스러울 정도로 저급의 것이었다. 하지만 샀다. 그리고 충전했고 커피를 시켰다. 커피가 아주 맛있다고 장담하지도 못한다. 그보다 급한 것은 어쩌면 인터넷 혹은 책상일지도 몰랐다.

4.
우리 집에는 책상이 하나 있다. 짙은 메이플빛에 척추를 부드럽게 감싸주는 의자가 세트인, 원룸에 기본으로 구비되어 있을 법한 조합의 것이다. 태어나서 둘다, 타인과의 동거를 처음 시도하는 남자들 둘이 이 공간을 공유한다. (이)도 형과 나는 번갈아가면서 책상과 의자를 사용한다. 그러나 가끔은 둘 다 개나 고양이처럼 동물같은 사람이기에 심리적으로 알아채지 못할만큼의 결핍이 생기곤 한다. 또 인터넷이 들어오지 않는 우리집에서 가장 가깝고 가장 편리하며 남을 신경쓰지 않아도 될만한 공간이 바로 여기가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5.
어쨌거나 나는 스타벅스를 다닌다. 카드를 가지고 다닌다. 자주 주문하는 사항은 '오늘의 커피 숏사이즈에 헤이즐넛 시럽 절반만 추가, 텀블러는 뜨거운 물로 씻어서'나 '라떼 톨사이즈에 우유는 무지방(혹은 저지방)으로 교체, 샷추가에 되도록 거품없이, 텀블러는 뜨거운 물로 씻어서'이지만 그보다 더 많이 주문하는 것은 '안녕하세요'이다.

6.
나는 이제 탈출을 꿈꾼다. 완벽한 조건은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음을 안다. 잡을 손이 없어도, 주먹을 꼭 쥔 채 지금 저 문을 박찰 수 있을까, 고민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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