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2012년 1월, NEX-5>
BGM, 보통의 존재 song by 언니네 이발관
나는 박경리가 좋다. 박경리 때문에 통영도 좋다. 좋다 좋다하니 통영에 가보고 싶어서 벼르고 벼르기만 했지 아직 통영에 발도 대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마음 속에는 아름다운 동네로만 물들어 있다. 하나의 기억이 다른 기억을 그렇게 전이시킬만큼 나는 박경리가 좋다.
유준상을 인터뷰하기 위해 영화 '하하하'를 볼 때, 나는 유준상만큼이나 통영을 많이 쳐다보았다. 그 언저리에 그녀가 있을 것 같았다. 벌써 작고 만 사년을 넘기는 이 시점에도 저 골목 어디엔가 아직도 꼿꼿한 허리를 치켜들며 지긋하고 강렬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을 것 같았다. '이 새끼, 네가 그러고도 사내야?'라며 부지깽이를 들고 뛰어와 나를 때려주기를 바랬는지도 모른다.
고교시절을 통틀어 가장 처절하게 읽은 책을 단 한권 고르라면, 거짓없이,'열한번째 사과나무'라는 순정소설이겠지만 나는 토지를 두어번 읽었다. 우리학교를 통틀어 이과생이 쉬는 시간 내내 토지, 태백산맥, 죄와 벌같은 이른바 '수능에 나오기엔 뭔가 글러먹은' 책을 잡고 있는 녀석은 나 하나로 퉁쳤었고 그 책을 잡고 밤을 지새우는 동안 내 뇌리에는 심지를 단단히 싸맨 촉수같은 것이 자리잡았는지도 모를 모양이었다.
그녀를 좋아하는 동안 나에게 생긴 것은, 어떤 종류에 한정되어 있기는 하나, 결혼관이었다. 말은 복잡한 척해도 결국 본능적으로 끌리는 모양새, 이를테면 예쁘거나 몸매가 좋은, 와 별개로 움직이는 '사상적 동지, 결코 -주의나 -당같은 것만이 당신에게 사상이라 생각되지 않기를 바라며'에 대한 고민이 결개처럼 따라다니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육군훈련소에서 박경리 선생이 작고한 것을 들었을 때 그 때부터 몇 일간 밥도 제대로 못 먹었던 것, 모두에게 비밀로 해두려 했으나 그것이 부끄러운 일은 아님을 알기에 오늘 나는 불신시대를 꺼내 잠시 펼쳐본다.
육군훈련소에서 박경리 선생이 작고한 것을 들었을 때 그 때부터 몇 일간 밥도 제대로 못 먹었던 것, 모두에게 비밀로 해두려 했으나 그것이 부끄러운 일은 아님을 알기에 오늘 나는 불신시대를 꺼내 잠시 펼쳐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