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Legend, piano play by Yuriko Nakamura

도종환 선생이 말했다, 김수영 시인이 말했다고. 시를 쓸 때는 삶으로 삶을 밀고가면서 그렇게 적어라고 말이다.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나는 취재를 해야했고 글씨도 써야했고 사진과 영상을 담았으며 카카오톡과 문자를 이용해 질문지를 계속 주최측에 보내야했다. 그 모든 일을 맨 앞 줄 가운데 자리에서 하고 있었고 선생은 열번도 넘게 나를 보며 웃어줬다. 사실 우리는 구면이었고 나는 그의 목소리를 꼼꼼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선생이 산전수전을 겪고서 돌이 되어가는 나무였다면 나는 이제서야 잔인한 바람을 맞이하는 꺾이고 생채기난 묘목이었다. 그 날카로움이 내 눈에서 빛났을테고 선생은 나를 어루만져 주었다.


<2012년 1월, 서울특별시 웰콤씨어터, NEX-5>

옆자리에 앉은, 청주에서 올라왔다는 아저씨가 나에게 시집 '접시꽃당신'의 5쇄를 보여주었다. 초판을 찍고 한달이 채 안되었을 때였다며 그 때를 회상하고 계셨다. 실은 반대편에 앉은 아내분께 이야기해주다 옛 연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 핀잔을 받고 나에게 말을 이은 것이었지만 왠지 모를 가슴따뜻함을 느껴버린 후여서 빙그레 웃으며 시와 시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수영, 유치환, 문익환과 이상에 대해. 문학소년이었던 그 치는 지금은 샷시를 만들고 있다고 했다. 취재를 왔다 하자 그는 "꼭 멋진 글을 만들어 주세요. 꼭 읽겠습니다."라며 주소를 알려달라 했다. 가장 낯선 그러나 마음에 맞닿은 순간을 느꼈다. 아무도 주지 못해 결코 받지 못한, 겨울 한 가운데의 위로를 받았다. 그 외에 위로가 될 사람, 없었다. 그 상황 자체가 나에겐 현실이었다. 
 

다시 태어난다면 지금의 삶을 똑같이 살고 싶으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도종환 선생은 아닌 척 진저리쳤다. 사회를 보는 사내는 중저음의 목소리를 가진, 목사라는 직업을 가진 이였기에 '다시 태어남'에 대한 당연성을 지니고 도종환 선생을 대했는지 모르겠으나 만약 나였다 하더라도 똑같은 대답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수감되어보지 아니했고 아내를 잃어보지도 아니했으며 몹시 아프거나 아니면 적어도 근래에는 오열해본 적 없는 나로서는 그의 역치에 기댈 위인이 되지 못했으나 그래도 느껴졌다. 유려한 시만을 내뱉기에 버려진 말들, 숨겨지거나 덤덤히 지켜넘긴 글들, 꽁꽁 싸매기만 했을 많은 시간들이 한줄기 흘러나와 눈가에 비쳤기 때문이리라.

<2012년 1월, 서울특별시 웰콤씨어터, NEX-5>

꽃을 품은 청년이었다. 선생의 이순에, 먼 산골 밖에서 부는 휘파람이 그를 달관에 들게 했으리라 싶어서 모든 행사가 끝나고 부산으로 내려오는 차 안에서 잠을 못 이루고 눈물이 고였음을 부인하지 않겠다. 청년답게 살고 싶다, 오늘의 다짐.

*좋은 기사를 짓고 싶어 열심히 썼습니다. 기사는 럽젠(http://lovegen.co.kr)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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