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다

from 하루들의 합 2011. 12. 23. 17:28
나는 오늘 죽었다. 스치는 바람이 찬 것을 알지 못하고 질긴 인연이 아직 덜 익은 돼지갈비인듯 한 입 가득 뜯어내도 새빨간 피와 죽은 상처를 지울 수 없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내 것이 시려, 이제는 어리다 말하기 부끄러워진 삶이 살그머니 쪼게 안을 파먹으려던, 으깨진 호두의 속살같아 낯빛을 바꿀 새 없다. 박제가 된 날들이 저물어 간다.

길가에 비닐봉지가 날리는 것을 본다. 겨우 십 분 전쯤 사과장수 아저씨가 트럭을 몰 때 탈출한 녀석이 고풍스러운 겨울 오후빛을 받아 잰 채 반짝거린다. 그는 사과가 유명한 구미의, 영주의, 혹은 벌교의 어떤 농가에서 여물었으리라. 그보다 오래 전 중동의, 미주의, 런던의 원전 근처에서 긴 세월과 풍취를 즐겼을테고 그보다 오래 전 군君은 흰빛여우의 발바닥이었을지 몰랐다. 흰 빛을 양보한 채 땅을 구르는 그는 이제 어디라도 좋을마냥 이리저리 떠돌고 있었고 유령같은 나는 적당히 거리를 두며 죽음을 인정하고 있었다.

어머니께 전화를 드리겠다. 깊은 어둠이라 고하겠다. 죄송하다 아륄테고 택배로 진득한 곳감 한 상자 보내야지. 아빠께는 겁이 나 문자를 써야겠다. 오랜 시간의 삼三교대근무가 곧 넋의 고난과 같으셨을텐데 우유와 흰 밥의 감사함에 대해 응당한 울음을 지을 것이고 입에 떨어지지는 모르는 말이 있음에 그릇됨은 없으리라.

삶에게 곧잘 전화를 받던 날 중에 그 어떤 날이 나의 날 것으로 빛났는지 생각해보다 오래 전 한 숨이 돌고 돌아 내 뼈와 털들이 된 것 아닌지 궁리해보다가, 그쳤다. 하늘에 볓빛이 보인다. 내린다. 산등성이를 맞이한 곧고 곧은 이등성 서너개가 내 생존을 알려주었다. 한숨을 뱉았다. 푸른 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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