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 혹은 미지근

from 하루들의 합 2011. 10. 16. 20:58
당신들만큼이나 나도 미지근한 것은 싫어하는 사람이다. 어떤 면에서라도 그렇다. 공과 사를 구분하려면 제대로 구분할 것이고 어떤 사람을 사귀더라도 사귀거나 헤어지거나지 중간에서 '사랑과 우정 사이'같은 지랄맞은 나홀로 뮤직비디오를 촬영하는 것은 싫어한다. 그리고 요즘 나는 푸른 하늘을 바라보지 못한지 참 오래되었다, 생각했다. 가을이면 가을답게 구름 한 점 없는 높다란 하늘이 가끔씩 보고싶어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돼지가 되어버린지 오래였다. 고개를 들고 눈알을 이리저리 굴려보아도 하늘에 쉽사리 닿기 어려운, 몸에 얼룩이 두어개 정도 묻은 가축용 돼지 말이다.

미지근한 물에 몸을 맡기고 수면 아래의 냄새를 맡은지 이렇게 오랜 날이 지났다. 본성이 물을 좋아해 자주 목욕이나 온천을 다니며 좋지 못한 피부를 다스렸던 나는 그러나 로봇이 되어버렸다. 0과 1만 빠른 속도로 혈관을 타고 지나갔고 아름다운 시절에 동경할 수 없어 차마 울고말았던 그(윤동주)를 생각하며 쓰던 시는 이제 딱딱하게 굳어가는 유통기한 지난 쿠키같은 산문이 되어버렸다. 종이 속에 내 젊음이 숨쉬고 있다. 다시 노트를 열 생각을 하지 못한 채 이렇게 키보드나 마우스를 만지고 있는 모습, 처량하다.

미지근한 물이 마시고 싶어졌다. 펄펄끓는 에스프레소에 스팀워터를 조금 더해 내게 잔을 내밀던 그 바리스타에게 "형, 얼음 하나만 띄워주세요."라고 말하고선 아차 싶었다. 어차피 내 손에 그 것이 쥐어졌을 때는 이미 커피 안의 작은 섬은 사라졌을 것이 뻔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조금 담담해지기로 했다. 그 섬은 내 마음 위에 이미 떠 있다고 생각하기로 한 것에 대한 이야기다.

오늘은 일요일, 시간이 흐르고 있고 나는 또 봄의, 봄빛의 보리수나무를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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