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ICA M3, 부산대학교 순환버스, 2007>
언니, 여기는 비가 와요. 비가 내리는 듯 하다가 흩어뿌리면서 입술과 어깨를 움찔거리게 만들기도 했어요. 산 너머 그 먼 마을에도 비가 올지요. 그 날 저녁 나누었던 오래되고 잊고 싶던 이야기들은 아직 그 자리에 있겠지요. 보고 싶어요.
오래 전 보낸 편지에는 답장이 왔었죠. 아니 보고 싶다고, 그래요. 오랜 시간이 쌓이고 단단해져 다시 그 위에 천금같은 마음이 쌓이면 돌아보거나 다시 파헤쳐보기에는 손 끝이 여려서 피가 잔뜩 날 것 같았어요. 오늘처럼 비가 쏟아지는 시분초가 흐르면 눈물인지 빗물인지 아무도 모르게 숨기지 않아도 가려져 마음껏 감정을 뱉을 수 있을 줄 알았어요. 손톱이 떨어진 자리에서 새로운 씨앗이 피어나듯 빠알간 흔적은 거름이 되어 언 땅을 조금씩 녹일 것 같았어요. 그렇게 가끔은 저의 마음과 언니 마음에 함께 비오는 날을 무척이나 기다렸답니다.
사람들은 걷고 있어요. 두 눈을 굳이 들지 않아도 걷는 소리가 들리잖아요. 또각 또각 하이힐 소리, 투덕투덕 워커 소리, 스잇스잇 운동화 끌리는 소리도 모두 구별할 수 있지만 맨발로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언니 소리는 제가 못 듣는 것인지 아니면 이미 지나가버렸는지 알 수 없지만 무릎에 힘을 축 빼고 조심스럽게 귀를 더 낮춰봅니다, 바닥에 스미듯이 조금씩 아래로 다시 아래로.
언니, 사랑하는 언니. 지금쯤 벼도 익었을테여요. 언니는 구리스같은 것 몇 병 사다가 창고에 쟁여놓고 철이 바뀔 때마다 탈곡기를 어루만지고 있으시겠죠. 하얗고 부드러운 손은 이제 단단한 갈색의 나무껍질같아졌을까요. 고운 말만 해주던 그 입에서 시골 할머니처럼 '내 새끼', '이 씨발년이 육실헐하네.'같은 욕도 툭툭 나올까요. 조금 웃음이 터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내 사랑하는 언니, 보고 싶어요. 보고 싶어요.
저는 더 이상 보이질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