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됐어요. 마이크를 놓습니다, 당분간일지요. 지금의 자리를 떠납니다. 제 자리가 그곳인지 제자리로 가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여하튼 서류를 냈습니다. 군말 없이 수리된 한 장의 종이와 ‘이곳에서의 어떤 일이든 함구해라. 그렇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각서까지 썼네요. 근로기준법, 근로복지기본법, 근로자 퇴직급여 보장법. 제가 아는 여러가지 규칙과 사실 위에 있는 어떤 내용은 지금까지 제가 버틴 2년 10개월에 비하면 오히려 가벼운 족쇄와 같다 자신합니다. 그만큼 저를 버리고 두려움과 강압, 보이지 않는 정치와 무능력, 무기력, 소멸해가는 열정과 쏘아버린 체력에 대한 불평 불만이 차곡차곡 담아 닫히지 않는 자물쇠 위에 다시 거짓으로 신화화된 죄의식이라는 바위를 올려 막아두기만 했다고. 크게 울 줄 알았어요. 눈물샘조차 터트릴 수 없는 시체에게 그것은 과분하겠지만요.
그래요. 나는 'CJ헬로비전'에서 도망쳤습니다. 그곳에서는 나를 붙잡았어요. 재계 서열 3위인 재벌그룹으로 이름을 바꾸고 더 큰 날개와 기회, 꿈을 그곳에서 펼쳐보자고요. 일부 언론에서 말하는 합병 시 위로금, 반 년을 넘게 일해야 벌 수 있는 돈도 마다할 필요있냐고 했죠. ‘문화를 만든다’고 ‘딴생각’을 이야기하면서 이제 ‘행복날개’의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창이 열릴 거라고.
하지만 생각해 본 적 있나요. 내가 진정 회사에 원했던 것을. 새벽 여섯 시 반에 집을 나서 기본 저녁 아홉 시, 조금 늦으면 열시에 돌아오면서 ‘지쳐도 하고 싶은 일 하니 됐다’던 내가 이렇게 회사를 못 견뎌 모든 것을 던지고 나온 까닭을. 잡코리아에서 주관해 조사한 설문에 따르면 직장인 장기근속의 가장 큰 사유는 ‘동료와의 업무 내외적 유대 관계’, 조기퇴사의 사유는 ‘열악한 근무 환경’이라고 합니다. 제 경우가 어디에 속하는지는 퇴사 직후인 지금 굳이 어디에 적지 않아도 아실 분들은 다 아시리라 생각해요.
물론 이곳에서’조차’ 제가 얻은 것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무엇을 할지 몰라 고민하던 제가 마음을 잡고 공부할 수 있게 됐던, 언론사 스터디를 병행한 취업 준비 1년 동안 만났던 사람들과 상식, 아주 조금의 영어 수준은 앞으로도 제게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두 번째 이 회사의 최종면접에서 떨어지며 ‘대기업 등에 입사하지 못한 사람’으로 분류되며 강제적 이별을 맞이하며 교제 관계를 맺을 때의 눈도 생겼네요. 방송사 준비를 달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부족했던 방송 뉴스 작성법과 스탠드 업, 발성과 시선처리, 그리고 동선. 그것들을 익히기 위해 출퇴근길에, 주말의 집에서, 연휴의 고향에서 나는 나은 나를 만들기 위해 많은 시간을 쏟았군요. 그 모든 것을 내가 한 것입니다. 이 조직이 아닌. 물론 개인을 꼽으라면 마지막 파트장이었던 K는 진심으로 나와 우리 팀을 위해 일정 이상의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이었다는 것은 제 인생 첫 정규 채용에서 얻은 ‘상급자에 대한 유일한 배울 점’이었다고 봅니다.
또한, 군사지역 피해보상을 외치는 주민에 대한 취재나 식수난에 고통받는 산골마을 이야기, 한 해도 빼놓지 않고 찾아갔던 새해 일출 현장 등 잊을 수 없는 기억들은 앞으로 어떤 부서, 어떤 현장에 가더라도 좋은 선경험으로 기억되리라 자위 해 봅니다.
저는 호흡기가 약합니다. 신체 전반이 약한 게 아니라 감기가 잦습니다. 일하는 동안 감기에 걸려 미안했습니다. 배가 차가우면 몸살에 걸립니다, 아마 3살 쯤부터 그랬을 겁니다. 가끔 몸살로 앓아 미안했습니다. 고양이를 길렀지만 지금은 알레르지가 생겨 털이 있던 자리에 닿기만 해도 눈이 붓고 두드러기가 납니다. 비중격이 휘어 환절기 콧물은 이미 예약 상태였죠. 이비인후과를 여러차례 가 미안했습니다. 땀이 많아 옷도 쉽게 젖습니다. 땀이 식으면 재채기가 자꾸나왔죠. 재채기를 많이 해 미안했습니다. 몇 개 없던 정장바지 중 하나가 찢어져 그걸 꿰매 입겠다며 그것을 든 채 면바지를 입고 회사에 갔었죠. 면바지를 입고 회사에 가 미안했습니다. 1호선은 이따금 예기치 않게 10분, 20분씩 정차하고 있을 때도 있었고 그 때문에 약 3년 동안 정확히 6번이나 1분 이상 지각을 했네요. 미안했습니다. 그래요. 많은 것이 미안했습니다.
그래도 남의 집 아들, 열심히 하려는 청년, 스스로 놀고 먹으며 회사 생활을 보내지 않았다고 자부하는 어떤 사람에게 그렇게 해야 했나요. 상식이라는 천장은 높고도 낮은 무척 상대적인 것이라지만 ‘내가 옛날에는’은 잘못 쓰인 오래된 동화에 나오는 말인 줄 알았던 내게는 가혹했답니다. 누군가 밉거나 싫다는 것이 아닌, 그저 나 혼자 속으로 내게 하던 말이랍니다.
나는 꽤 전방지역인 강원도 화천의 육군 제27사단 속칭 ‘이기자 부대’를 나왔습니다. 남자들 사이에서는 그래도 꽤 속칭 ‘빡센 군생활’을 하는 지역으로 알려졌고 나 또한 쉽지 않은 군생활을 했습니다만 나는 군대 이야기를 전역 후 한 달 이외에는 어떤 시간과 장소에서도 꺼내본 일이 없습니다. 강렬한 기억이지만 그곳에서의 나는 내가 아닌 철저하게 통제된 ‘껍질 바깥 모습’이었기 때문에 껍질을 벗는 순간 그것은 이미 나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2년 11개월의 내 회사 생활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아요. 군대보다 더했지만, 며칠 사이 모두 지워지겠죠. 지워지길 간절히 바라 봅니다.
그랬고 그랬군요. 그럼 이제 모두에게 안녕을 고하며 이 벽을 깨고 나갈테여요. 벼랑과 지옥의 불바람과 파도가 산더미일테지만 이제 나는 그를 맞을 준비가 됐군요. 강건해진 뼈와 바람을 읽는 법을 배울거예요. 이만 정말 안녕히 안녕히 그리고 다시 안녕히.
*술에 꽤 취해 밤 늦은 시각에 적은 글이라는 것을 적어도 읽는 당신들은 이해해 주시겠지요.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