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감정 표현에 자유로운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것은 지난 2011년 정도가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무슨 말이냐면, 감정보다 탐구와 해부가 더 내 심장 가까운 곳에 붙박이됐다는 정도. 시그널이라는 중편드라마를 보고 느낀 감정이다. 나는 실은 드라마를 즐겨보는 사람은 아니다. 다만 서스펜스와 추리극을 극도로 좋아하는 편인데 이 드라마는 1,2회에서 나의 집중력을 흡입했으나 그 이후에는 잔잔하게 끌고 간 정도의 드라마였다. 내가 그동안 봐 온 드라마나 영화에 비하면 그렇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방면에서 한국 드라마 답지 않은 면면을 보인 것은 사실. 이것을 '세련됐다'고 말하려다 사실 그게 아닌 '영미권 드라마의 극적 요소가 많이 투영된다' 정도로 바꾸기로 했다가, 다 덮고 그냥 보기나 하기로.
이제훈 (배우, 33세)을 처음 본 것은 2011년 개봉작 영화 고지전. 근래에 본 적 없는 무척 잘생긴 배우가 나와 대사를 격정적으로 씹는 바람에 집중력은 흐트러졌지만 '죽어도 못 보겠다' 싶은 연기력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후 영화 파수꾼, 물론 이 영화가 먼저 나왔지만 나는 그 후에 봤다,의 기태가 그였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연기자의 연기는 늘었다 줄었다 하는구나' 혹은 '배역이라는 것이 정말 중요하구나'라고 생각할 정도로 훌륭한 연기를 펼치는 이제훈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대망의 건축학개론'. 조정석과 수지의 재발견, 물론 나는 청춘멜로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아서 그 둘도 큰 감흥을 줬다 추억하지 않지만 그래도 두 배우는 이 영화를 계기로 스타로 발돋움한 것은 맞으니. 조정석이 이미 스타였다는 말은 말길 바란다. 뮤지컬에서의 그는 나도 이미 몇 차례 관람한 적 있을 정도로 좋아하지만 영화나 TV에서의 그를 일컬는 것이다, 이 있었지만 뚜렷한 두각을 나타내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몇 개의 '못 뜬 영화'와 그래도 괜찮았던 드라마 '비밀의 문'을 지나 도착한 드라마 시그널. 과거와 현재를 연기해야 하는 배우 김혜수와 배우 조진웅 등을 제외한 인물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그. 그러나 '고지전 속 발음에 대한 기억'이 계속 나를 붙잡아서인지 그의 발음은 극초반 몰입을 방해했다. 대사가 길면 길수록 그랬다. 드라마인데 연극을 보는 듯 했는데, 혹자는 여기에 '프로파일러라는 직업 특성을 반영한 것과 경찰대 출신으로 일반 경찰들과 대비되기 위해 만들어졌을 설정'이라는 댓글 방패막이까지 펼치기도 했으나 프로파일러 표창원을 오랜 기간 동안 여러 매체에서 본 바로는 그건 그냥 이제훈의 특성이었다. 물론 3회 이후부터는 '그런가보다'하고 보게 되긴 했지만 주변인들과 살며시 대화를 나눠 본 바로는 나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닌 듯 하다. 앞으로도 호불호가 갈리긴 하겠지만 그런 면면이 조금 더 자연스러워지면 한층 더 세련된 마감이 될 듯. (물론 그런 면은 한 명의 배우로서의 그에게는 장애물이 되지 않는다. 너무 잘생겨서.) 올해 데뷔 10주년을 맞는 이제훈의 발전을 기대해 본다.
조진웅 (배우, 41세)이 나온 대표작은 거의 다 본 것 같다. 물론 그의 연기력에 대한 큰 불만은 없다. 거의 '본능적으로' 연기를 잘한다. 특유의 말투, 표정이나 감정을 끌고 가는 타이밍에서 한국판 메소드 연기의 계보에 있는 것이라 감히 말해본다. 그러나 '연기철학'에 대해서 묻자면 '아직 잘 모르겠다'는 것. 최민식의 인터뷰를 본 적 있다. 메소드를 위해 인물의 모든 면을 파헤치려고 여러 생각과 필기로 한 사람을 만들었다는 것. 물론 조진웅 역시 그런 고민이 있었고 지속적인 발전을 위한 '눈물나는 고민'이 있다면 좋겠지만 여러 인터뷰를 찾아본 결과 그런 면면이 언론지상에 잘 드러나지는 않은 듯 하다. (인터뷰를 싫어해서 그런 면면이 안 드러난 것이면 모르겠는데 영화 홍보 차의 인터뷰 등은 많았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연기력이 없어 영화 바스켓볼 다이어리로 오스카상(상 자체가 아닌 심볼로서 오스카상을 언급한 것이다.)을 늦게 받은 것이 아니다. 어쨌거나 앞으로도 그의 영화를 더욱 기다릴 것이다.
오랜만에 블로그에 글을 쓰다보니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는데, 다시 시그널로 돌아와 보자면 시그널의 성공 포인트의 칠 할은 극본가 김은희와 연출가 김원석의 업적이 아닌가 싶다. 드라마 싸인과 드라마 유령, 드라마 쓰리데이즈 등을 쓴 김은희가 밀양 여중생 집단 강간 사건과 화성 연쇄살인사건 등 방대한 자료와 함께 심도 있는 구성을 해놓았다면 김원석은 속도감을 잃지 않는 구성과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면서도 일반 시청자들이 헷갈리지 않게 하는 배려를 한꺼번에 엮었다 본다. 아무리 잘 만들어도 어려우면 싫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아주 쉽게 수사물을 풀어놓은 것. 게다가 근래에 본 적 없는 열린 결말은 후반부 가장 큰 포인트. 개인적으로는 속칭 '시그널2'는 안 나왔으면 하는데 만약 나오더라도 후속편은 대부분 망하는 구조는 안됐으면 한다. 물론 그게 관계자들이 아무리 빈다고 해도 시대 상황이나 동시간대 편성, 국민의 기본적 관심사 등이 더 큰 영향을 주긴 하지만 말이다.
이제 토요일에 해야 할 일이 하나 준 것은, 나로서는 기쁜 일. 이제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과 시사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만 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