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영화를 보고 숨이 막힌다 했다. 징그럽다 했다. 이물감 있는 무언가 입에 있지 않는대도 쓰고 텁텁하다 했다.


내부자들의 여러 장면에는 영화 속에서만 존재하는 현실들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결국 이를 현실에 빗대 고민하게 됐다. 조승우가 연기한 우장훈 검사처럼 '내부 비리 등을 폭로하고 옷을 벗고 나올 때 그를 밀어 줄 대한변호사협회 소속 인물이 얼마나 될까' 에서 부터 사론을 두고서 (실제로는 사론私論을 사론社論으로 만들며) 가장 강력한 소설을 써대는 이강희 주간같은 논설위원들의 설계까지. 가까이서 멀리서, 또 다른 방향에서 지켜 봐 온 모든 관계들은 전혀 '허황된 소설'이라고 주장하는 일부 사람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어느 정도 면면이 들어 맞는다 보여진다. 발행부수와 매체 다양화 때문에 ATL에서 BTL로 옮겨가는 (실제로는 BTL이 ATL 속으로 송곳처럼 쑤셔대며 들어가는 형국일 수 있으나 우선 일반적인 수준으로 말한다.) 과정 중에서 많은 종이 신문사들이 어려움을 겪었고 그 이후 '큰 광고'를 받지 못한 일부 사의 기자들은 '반 영업 기자'의 형태를 내외적으로 강요받았다는 것이 기사화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것들은 '언제나처럼'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더욱 본질로 파고드는 자세가 필요할 터, 나의 생각에는 그렇다. '광고시장과 엮이지 않은 독립적 언론은 언제나 생존이 어려운 것일까.(물론 탐사언론 뉴스타파가 이를 전개하고 있다고 보지만, 실험적으로. 여기서의 실험적이라는 말은 아직 수 년이 지나 완벽한 체계가 잡혀 '어느 정도 이상 망하지 않을 뼈대가 완성됐다 단언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해외 언론-광고 체계와 국내 시장이 큰 의미에서 다른 점은 무엇일까.(기사-광고의 순환이 아닌 광고-기사의 순환 체계)' 등이 생각나지만 당장 더 큰 틀에서 이를 들여다 봐야 하는 입장에서 이에 대한 해법은 저마다의 시선으로 남겨 둬 본다.


이에 비해 거짓말은 더 독한 방식으로 세상을 이야기한다. 일부 평단에서 '허영의 감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여성의 초상'이라 말했지만 이는 비단 '여성'의 문제로 치부할 수 없을 것이다. 당장 온갖 사회 관계망 서비스(SNS)에 들어가만 봐도 그럴 것이다. 그 모든 것이 '타개나 개악의 대상'은 아니지만 현미경 속의 모습처럼 사회가 온통 이상향적 세계는 아닐테니까. 그렇지만 감독이나 해설 등이 말하듯 이 여성은 '리플리 증후군'에만 있는 사람은 아닐테다. 노출 속에 있는 대부분이 어느 정도씩 공감해야만 하는 '보통의 노출 증후군' 정도를 영화적 극대화로 보여줬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 보는 온통 역겨웠으나, 왜냐면 내가 이와 비슷한 연애를 경험한 적 있기 때문이리라, 보는 온통 역겨웠던 것에는 나 또한 포함돼 있었다.


둘 중 어느 하나를 제대로 평이나 론해도 모자랄 판에 그저 엮어 버무리는 이유는 '그저 내 블로그에 쓰는 내용'이기 때문, 돈을 받고 쓰거나 기고를 한다면 전혀 달라지겠으나 어쩌겠는가. 나 역시도 이 따위로 살아가는데. 내가 원하는대로. 그럼에도 분명히 짚고 지나가야 할 것은 허황된 영화적 문법 밖의 대부분 내용은 진실이라는 것. 또 진실과 영화를 잘 구별해 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 마지막으로 그런 진실을 현실로 마주했을 때 어떻게 달려들거나 냉철하게 서 있을지에 대해서는 (개별 가치관에 맡기겠으나) 자신의 뜻을 세워두었으면 한다는 것, 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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