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을 짜서 종이를 만들던 날들이 있잖아, 생각치도 못했던 순간에 퍽하고 쓰러져버리는 순간에도 잊혀지지 않는 트라우마를 일부러 내 몸에 마음에 남길 수 있는지 궁금했어요. 궁금한 것은 참을 수 없는 나였고 그럴 나이는 쉽지 않게 흘렀네요. 내가 더 성숙했다고 사람들이 말해도 내가 엄마보다 나이를 더 먹는 것도 아니고 그 애보다 구부정해서 키가 줄어든 것은 아니니까. 결국 나이가 먹어도 그대로잖아요. 맞죠, 내 말.
남자애들은 열 두 살이면 자위를 시작했대요. 적어야 초등학생 많으면 고등학생, 대학생까지 있긴 하지만 왜 그렇게 되었을까 생각하다가 그들이, 또 내가 저지르지 않았을 많은 실수들, 그러니까 내가 태어난 것과 같은 이야기들말이죠, 이 오래도록 업보처럼 공기에 남아 그들의 귀에 가슴에 손에 음경에 간질간질 바람을 넣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어요.
벽지를 간다면 말이죠. 실은 회색이 좋아요. 하얀, 새하얀 빛의 우유에 먹물 한 방울 떨어뜨린 것 같은 그런 옅은 회색이 좋아요. 물론 다시 생각하겠죠. 구멍은 실은 벽지가 아니라 벽에 뚫려버린 것이니깐요. 벽지를 뜯고 다시 새 것을 떼어와 풀을 개고 벽을 사르르 물들인다해도 기민한 손 끝에, 그리고 이미 마음 속에 '이즈음에 그 구멍이 있었지.'라고 기억해내지 못할 일은 없을테니까 그건 결국 어찌해서 될 일은 아닌 것 같아요. 그래요. 그런 것 같아요.
나도 공기 속에 남겨질 수 있는지 궁금했어요. 실은 사람들은 열망해요. 모두 공기가 되기를요. 태어날 아기가, 사람들이, 무수한 꽃들이 자신들의 모습을 가끔이라도 떠올리길 말예요. 그래서 사나봐요. 목이 뻗뻗해진다, 이제 갈게요. 집이 보통 멀어야지 말예요.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실은 내 볼이 시려요. 입을 꼭 다물고 있어도 바람이 쉬 들어오는 것을 보니까 무슨 일들이 있긴 있었나보지만. 그럼 난 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