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는 참 신기한 짐승, 불교적 산물. 결국에는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 륜은 돌고 돌아 모든 것에 닿는 듯 하나 결국 저 스스로 발 대는 곳은 이전 부분에 의해 오래전 정해져 있고 바퀴 홀로 갈 수 있는 곳은, 제 몸 하나밖에 없는 것. 우리는 그를 알기에 페달과 체인을 선물해 사람과 붙어 먹을 수 있는 개체로 그를 지었다. 자전거.


오랜 역사를 가진 자전거에 대해 일(취재)을 벌이는 간간이 알게 됐지만 오래 몸 붙이지 못했던 그를 실을 준비를 했다, 사당동 공영 주차장. 모인 이들의 얼굴을 모두 알게 되기까지는 그로부터 여드레란 날이 걸렸으나 몰래 설피 본 얼굴들에는 긴장 반 설렘 반, 그저 드는 생각은 ‘전부 나보다 잘 타 보인다’. 바퀴를 떼고 차곡 차곡 녀석들을 쌓는다. 사람보다 자전거가 이 순간은 중요해 그들 먼저 좋은 자리를 내어주고 우리도 구석에 자리를 잡는다. 버스에 시동이 걸리고, 우리 대다수는 잠을 청하거나 휴대 전화를 붙잡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댄다.


사실 국토 종주의 시작에는 ‘여수의 출발’도 적지 않은 몫을 했다. 내가 난 곳이자, 이십 년 내 역사를 담은 공간. 우리는 대개 고향보다 오래 머문 곳을 ‘제 2의 고향’ 등으로 이야기하곤 하는데 나는 7년을 보낸 부산과 3년째 붙어 있는 서울 어디도 그보다 오래 혹은 그만큼 적을 둔 적 없으므로, 옅어졌을지언정 단 두글자의 지명에도 강렬한 섬광을 느꼈다. 실은 그만큼의 추억은 없는, 학교와 독서실, 학원과 서점, 놀이터와 좁은 번화가가 기억의 구 할이지만 느꼈던 바람과 지긋한 바다, 높고 낮은 등고선들이 나를 담던 화폭은 이미 마음과 몸에, 내가 나기 열 달 전부터 이 곳 저 곳 문신처럼 쌓였기 때문에. 그런 공간 그런 도시 그런 역사가 있는 여수에, 나는 덜컹거리는 정차 소음에 도착했다.


우리는 서두르기 시작했다. 자전거를 조립했다. 다시 온전한 형태로 녀석들을 배열한다. 그리고 저마다 간단한 저녁 식사를 때우기로, 나는 고향이니만큼 엄마와 아빠가 와서 간단한 불고기를 먹었다. 바로 곁에 있는 모교 여수고등학교는 주위가 엑스포로 천지개벽을 할 때도 그대로 있더라. 살며시 내려 앉은 어둠 안에서 조용한 학교를 한번 바라보던 중, 드디어 오리엔테이션이 시작됐다.


우리는 텐트에서 지내게 되며 식사는 저녁을 제외, 최대한 간단하게 먹게 될 텐데 첫날은 특별히 여수엑스포 아쿠아리움에서 자게 됐다. 인터넷에 이미 유명한 오키나와 수족관처럼 여러 물고기가 헤엄치는 곁에 침낭과 매트를 깔고 누웠는데, 머리가 간지러워 감은 게 실수였다. 공기는 생각보다 찼고 콧물과 눈물이 끊임없이 나오기 시작해 잠자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그 잠 못 이루는 순간 사이 머릿속 해마는 계속 유형하며 아프게 내게 짖어댔다, ‘내일부터 어쩌려고 이러니’. 그러면서 선잠의 연속. 잤다 깼다를 반복하다, 알람 소리에 반-무의식적으로 침낭을 개기 시작했다. 이제 페달의 날이다. 우리는 모두 같은 옷을 입고 멀리 떠날 말을 쓰다듬듯 자전거를 매만지기 시작했다, 결국은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바퀴 둘과 함께, 각자의 제자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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