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생각보다 재미있다. 알 수 없는 상황에 지속해서 부딪히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어릴 때 학년 바뀌는 게 마냥 좋지는 않았다. 3월은 나에게 지독한 달이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다. 아는 이도 있지만 친하거나 친해지고 싶은 사람과 같은 반에 배정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완전하게 새로운 분위기, 사람이 정해 놓은 날, 달, 해라는 규격에 따라 우리는 지층이 변동하듯 재배열 돼 갔는데 거기에는 내 의사는 물론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도 좀 별난 아이에, 좋고 싫음에 대한 표현이 확실했고 그것이 아니꼬운 녀석들과 부딪힐까 조심스럽거나 막 나가길 반복했다. 때문에 친구는 홍해처럼 둘로 갈렸지, 싫어하거나 아니거나. 그럼 내가 '아니거나'와 항상 친했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왠지 소행성 같은, 그냥 그런 '막나가'였다. 물론 지금도 비슷하지만.
나는 대부분의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다. 지금의 나를 보면 "네가?"를 외칠 사람이 한 둘이 아닐 것이다. 절반은, 대학교 시절까지의 나를 본 이들. 그들은 내가 운동을 한다는 것을 상상조차 해 본 적 없을 것이다. 학과에 남자가 부족해 보통의 학과 남학우들이 참여해야만 했던 학과 축구부에 들어가지도 않았던 것은 물론이거니와 초등학교 시절부터 운동장에서 미치도록 나가 뛰어놀아본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나머지 절반은, 지금의 내 주위의 사람들.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인 N사에서 트레이닝 멤버로 활동에도 참여한 적 있고 지금은 조그만 런클럽을 이끌며 3종 경기에도 도전한 전력이 있는 나는 그들의 눈에 '운동에 대한 열정이 있는 운동신경 없는 사람' 정도로 보일 것이기 때문에.
내가 바뀐 것은, 다른 글에서도 쓴 적 있으니 그 글을 참조하시면 좋겠다, 순전히 살 때문이었다. 지금도 운동을 그다지 즐기면서 한다고 '장담은' 하지 못하고, 청소년기 성장판 열린 시기의 어떤 소년에게 어머니가 압박을 가하듯 나를 밀고 있기에. 거기에 모 브랜드에서 밀어붙이는 문구처럼 '한계에 도전하라'거나,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식의 문장이 멋져보이거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해서 힘들면서도 입가에 미소가 돋는 그런 성미나 성향도 아니므로 나는 (특히 최근) '안되면 포기하라'는 식으로 운동을 해 왔다. 젊어서 건강하자고 운동 열심히 하다가 연골 수술하고 어디 부러져서 입원하는 것은 정말 싫었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이번 국토 종주는, 끝나고 나서 생각하자면 참으로 무모했다. 나는 (3종 경기를 접하기 전에) 제대로 자전거를 많이 타본 적 없는 사람. 부산에서 타던 T사(인 데 사실 티티카카다. 지금부터는 자전거 브랜드에 한해서는 브랜드를 밝힐 수도 있다. 한시적.)의 미니벨로인 트라이스터를 제외하면 제대로 된 자전거를 만져본 적도 없는 '자전거 문외한'이기 때문. 물론 올해 초 도전한 바 있는 3종 경기를 위해 샀던 20만 원대의 로드 자전거는 대회만을 위해 구입한 것이었고, 이 것을 구입하고서 취직을 하게 되며 한동안 방치했다 대회 참가 등록을 하고서 200km 정도 (최대 거리는 대회날 탄 30km였다.)가 전부일 정도니, 말 다 했지.
그런 내가 이번 자전거 국토 종주, 물론 정식 명칭은 One Mile Closer 원마일클로저 이지만 내 블로그는 내 마음대로 쓰는 것이니 자전거 국토 종주로 통칭할 것이다, 를 도전한다고 했을 때 자전거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누군가가 내 곁에 있었다면 다급히 말렸을 것이다. 실력은 물론이거니와 정신적인 무장도 안됐기 때문. 그럼에도 가려고 했던 것은, 무언가 내가 운동에 조금은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일까. 몰라, 인생은 생각보다 재미있다.
그렇게, 신청했고, 답이 왔고, 나는 종주준비자 중 한 명이 됐다.
3종 경기가 끝난 6월의 어느 날, 나는 새 자전거를 샀다. 삼천리 자전거사의 첼로라는 상표, 105급으로 통칭되는 솔레이어 A7. 83만 원이라는 (나로서의) 고액을 주고 산 이 자전거는, 실은 처음에는 색도 형태도 마음에 들었다. 반짝이는 흰 색 빛깔 위에서 열심히 달릴 생각을 하니 다리가 저절로 움직이고 있는 듯 했는데, 실상은 국토 종주 시작 전 날까지 열 번도 채 타지 못했다. 몸에 모든 힘과 정신의 피폐를 이끌고 집에 도착하면 9시, 이것 저것 준비하다 잠들면 아침 6시에 일어나려면 (많이 잔다고 누가 말할 지 모르지만 나를 잘 모르는 사람의 이야기. 나는 아직도 8시간 30분의 수면을 원하는 사람. "잠은 무덤가서 자고, 여러가지 열심히 해보자. 경험하자!"고 누군가 나에게 말했다가 인연이 끊어질 뻔했으니. 나에게는 그 경험이 잠이다.) 그럴 틈이 없었다. 변명은 아니고, 상황인데 여하튼 그런 상태로 시일을 보내면서도 패드 바지니 헬멧이니 알아보며 '외관'에 대한 '허상'은 꾸준히 생각해 왔으니, 나도 참 이중적.
그리고 나서, 두 달이 채 남지 않아서 급하게 몇 번인가의 단체 라이딩에 참여한 나는, 드디어 기약한 휴가를 얻었고 그 기분도 잠시, 눈을 감았다 떴더니 그 날이었다, 9월의 두번째 주 토요일. 평균기온 19.2도의 어느 낮, 우리는 모두 향하고 있었다. 관악구의 사당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