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고민 끝에 내 시간은 조롱보다 더한 침묵으로 채워졌다.


장년기 남성들의 우울증을 알 것 같은 요즘이다. 사람은 살수록 단단해진다고, 단단해져야만 한다고 누군가 말했던 것이 기억난다. 하지만 그런 고민 없이도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사람들, 이를테면 꽤 적지않은 부를 부모 혹은 조상 대대로 축적해 온 이 등등의, 에게 고민을 강요할 수 있는 것인지 되묻고 싶다. 최근 발달한 사회관계망 서비스에 의하면 어떤 이들에게 ‘세월호 참사’는 ‘나도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며 내세울만한 거리였고 각 시기마다의 ‘투표’는 ‘나는 투표하는 민주주의가 무엇이고 그것을 잘 행동하는 사람이다’는 표징이었다. 한없이 고민하고 힘들어하던 이들은 어쩌면 사회관계망 서비스는 막론하고 더 깊고 심오한 고민 끝에 결국 하나의 묶음, 예를 들면 논문이나 하나의 작품,으로 드러내는 이가 아니었던가 싶다.


3년 전에 싸이월드라는 웹 홈페이지에 써둔 나의 글은 정의를 담고 있었는데 지금 내가 어디에나 갈기는 글들은 과연 정의롭지 않은가,하면 그것은 또 아니다. 하지만 사람의 주변환경과 관점은 바뀌어 가는데 결국 변하지 않는 것은 ‘사람은 사람과 산다’. 모든 사람들을 알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쉽지 않았고 그렇다고 투덜대거나 체념하기에는 세상이 넓고 길지 않은가. ‘평균적 인간’은 없는데 우리는 가끔 너무 ‘평균의 삶’을 보거나 그보다 조금 더 나은 삶을 ‘사람’이라 칭하지 않는지 고민해 본다.


단단해지고 싶다. 하지만 더 ‘싶은 것’은, 적어도 어제의 나보다 ‘나’를 잘 알아가는 ‘오늘의 나’를 짓는 행동이다.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더 발전했으면 하는 것이 아니라.


침묵은 지워지지 않네, 그 어떤 안팎의 고민으로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