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월, 동경.

from 보통의 여행 2015. 4. 5. 13:04



감성적 혹은 감상적이지 말자고 다짐해 봐도 그렇게 자라 왔는 것을, 냉철한 시각이 필요할 때 조차도 나는 고락산 중턱 혹은 영치산 언덕배기에 물든 진달래 꽃을 바라보는 바다 바람 냄새의 촌-엄마들이 ‘옴매, 저 것 좀 보소, 산이 타고 있어부네.’ 말을 잊기에는 깊게 시간이 심장보다 깊은 곳에서부터 그게 있는데. 그래서 이렇게 또 글을 쓴다.


사랑하는 사람을 놓을 수 있는 순간이라는 것이 있을까. 사랑했던 사람을 놓을 공간이라는 게 있을까. 혹은 사물이나 순간이라도. 내 ‘사랑 순간’이 ‘그 것’에 전이된다면 그 것은 그 마음이나 감정을 그대로 가지고 있게 되는 것일까. 아니면 다른 방향으로라도 방출이 될 것인가, 에 대한 쓸모 없는 고민을 했던 적 있었다. 물론 결국은 ‘그 것’을 포함한 모든 것들은 ‘절대-상대적’임을 안 후로 최대한 나에게만 담아뒀었지.


동경에는 벚꽃이 움트고 있더라. 거의 흰 빛부터 진분홍이 하늘에 날리고 눈썹 위나 콧날에 붙기도 하고 꼬마들은 떨어지는 그 녀석들을 받으면 마치 세상을 다 가지거나 소원이 이뤄질 것처럼 잰 걸음을 빨리 옮기기도 했어. 어떤 이들은 세슘을 막을 헝겁을 덮기도, 또 어떤 사람들은 시부야 사거리에서 한 시간이 넘게 사진을 찍기도, 또 어떤 이들은 여전한 일상으로 아침 일곱시 반에 급한 듯 발걸음을 옮기기도 했지. 쇼핑가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넘쳐나고 신칸센이 벚길철도를 달릴 때는 나같은 관광객 말고 일본인들도 ‘와!’를 연발했어.


그 많은 길들을 걷는데 나는 왜 일본, 그리고 동경에 다시 온 것일까. 물론 취소하지 못하는 조건의 비행기표를 샀고, 동경마라톤을 가지 못한 이유가 크지만. 되도록 적게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기자,고 혹자가 말하기도 했는데 지난 몇 일간, 준비기간을 포함한 여행기간은 나는 많이 생각하고 많이 움직였다. 일본 동경에 있었지만 짧은 세계 여행을 했다 생각할 만큼 많은 이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눈물 날 만큼’ 감동스러운 친절을 베푼 리오 형과 게스트 하우스의 하우스 키퍼 쿠미코 시오하라, 함께 규카츠를 먹고 생전 나를 처음으로 애니메이션 피규어 샵과 성인 DVD가게 구경시켜 준 용우는 나에게 어떤 ‘다음 단계’로 데려갈까. 그들에게 나는 ‘사람같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남이 보는 나’ 신경쓰지 않고 살아가려 하지만 우리의 찰나가 나로 대표되는 여러가지 ‘이름, 예를 들면 한국인이나 이 나이대의 남자, 방송 기자같은 껍데기’에 크지 않은 누가 되기를. 어떤 면면의 어른이 된 것 같아 서운하긴 하지만 예의는 어른이나 아이나 필요한 것이니까.


큰 인연이든 작은 인연이든, 가장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아는 사람이 느는게 ‘조금은’ 부담스럽다. 사람을 알아간다는 것은 좋은 면만 보거나 보여주는 것을 쉽게 포기해야하는 것이니까, 내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은 십 년 이상된 ‘기피감’이고 그 때문에 두가지 행동 중 하나로 사람을 대했다. 심하게 무관심하게 굴고 밀어내거나(내가 상처 받기 싫어서) 심하게 대하거나(편하게 대하는 것). 이것은 마음을 주거나 받는 것일 때는 상관없는데 범위가 물질이나 재무적인 것으로 확장되면 대개의 경우 전자로 어깨를 기울였다. 애매하게 친하거나 애매하게 밀어내는 것은 한없는 고민만 만들어 내니까, 시대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더라도 내가 못하겠는 것은 못내겠던 것이여서 그랬는데, 이번 여행은 나에게서 그 것을 조금 희석 시켜준 것 같다, 물론 아직도 갈 길은 멀고 또 어디에도 하라주쿠같은 익명성의 거리가 있음을 알지만 말이야.


누구도 내 마음 다 알아 주지 못해, 물론 나도 마찬가지겠지. 그렇다면 앞으로 내가 조금 더 노력해보기로. 물론 사람은 ‘티나게’ 쉽게 변하지 않겠지만.


빛이 든다, 꽃에 계절이 들듯 나에게도 사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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