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아홉의 내 꿈, 꿈. 고 이와 고 삼은 내 상상력의 시기였다. 난 스물 넷에 대학을 마칠 줄 알았다. 군대를 생각 못했으니까. 스물 여섯에는 회사에 들어가서 스물 여덟에는 결혼을 할 줄 알았다, 적어도 이 년 이상 만난 여자와. 물론 집에서 같이 배를 깔고 책을 보고 뒹굴 거리다 관계에 들어가도 어색하지 않을 거리 정도는 될 줄 알았고 내가 갑자기 계절이나 상황에 감정이 격해지면 이유 묻지 않고 안아 줄 수 있는 사람 정도는 될 줄 알았다. 서른 둘이나 셋쯤에는 회사를 돌연 그만두고 육 개월 정도 통속적인 사회학 책을 읽거나 외국어 학습과 언론학 책을 쓰고 다시 삼 개월 정도는 외국에 있고 전혀 다른 일을 준비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 때까지만 해도 아이에 대한 생각이 없어서 였을까. 서른 다섯에는 프리랜서로 전쟁 지역을 다니며 사진과 글을 찍고 쓰는 기자(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지만 나는 종군기자를 꿈꾸며 이 직업을 꿈꿨다.)가 되어 있길 바랐고 다시 마흔부터 마흔 셋까지의 종교공부를 통해 마흔 다섯에는 '파이를 구울 줄 아는' 종교 전문 기자가 되길 바랐다. 쉰 셋에서 쉰 다섯에는 은퇴를 준비해 가평이나 하남, 대전 정도에 크거나 작지 않은 집을 짓고 밭을 일구며 고구마 라떼를 만들 때 쓸 고구마 농사를 짓고 싶었다.
상상력이 부족해서인지 혹은 그 이후의 나이에 대한 체감, 이를테면 서른에는 삼년 들일 공부를 예순에는 몇 년이 걸릴지 모르니까,이 없어서인지 당시 내 상상의 끝은 항상 예순해 전에서 끝났지만 난 항상 '적어도 240살까진 살겠다'고 생각했고 말해 왔다. 다 알 수 없지만 항상 고민할 거리 있는 세상이 어떻게 변화해가는지 느끼고 싶었다. 되도록 입을 닫고 글로 짖으며 말보다는 행동으로 펼치고 싶은 소년이었던 것 같다. 물론 스쿠터 베스파나 신형 프라이드 해치백 스틱모델에 대한 로망은 그 때나 지금이나 같지만, 나는 많은 면에서 빗나가고 있지만 그래도 엇나가진 않았다 생각한다. 쉽지 않지만, 울지 않진 않겠지만, 담대하게 가자. 이것은 영웅 없는, '절대 어둠' 없는 통로의 중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