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처음 서울에 발을 내딛었을 때, 누구의 힘도 빌리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버텨보리라 했던 마음은, 즐겁지는 않지만 언젠가는 해내고 마는 그런 드라마같은 일은 없었다. 발 붙일, 그러니까 맨발로 붙일 한 평의 방도 없었는데 거기서 무엇을 시작할 수 있었냐는 말이지. 시작, 반의 반 발부터 시작했지만 그 후로 내가 지금을 버티는 몇 평의 빌라에 세 얻기까지 내 힘으로 무엇이든 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서른 몇 살까지 서울에 와 본 적 없는 K를 만났다, 지난 달. 그의 인생에는 굴곡도, 힘든 것도 없었고 병아리를 풀어 기르는 냄새나는 축사만으로 행복한 사람이었다. 그보다 돈을 두 배나 벌고, 지하철, 택시를 타고 삼청동에 갈 수 있는 내 낯이 그보다 어두울 지경이었으니 어쩌면 아이러니 하지.
사실 부산을 떠난 것도 어쩌면 반쯤은 도망이었겠지.
그런 어두움을 뚫고 나는 이 자리에 섰다. 직업인과 직장인의 어중간한 경계는 그냥 포기하기로 한다 하더라도 나는, 나만 이렇게 고민이 많은 것일까.
J는 은연 중에 내개 그런 말을 한 적 있다. “넌 참 좋은 사람이야. 하지만 가끔 보면 고민이 너무 많은 것 같아. 고민은 적으면 적을 수록 좋단 말이야? 그리고 그런 고민많은 증세들은 전염되기 십상이거든. 그래서 덜 고민하는게 좋을 거 같아. 서로 다른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말이지.” 그 중 내가 기억하기로 한 말은 “넌 참 좋은 사람이야.”였다. 그것만이 거짓말이었을테니까.
고민이 많든 적든, 최소한 내가 과거라 들먹거리지 않기로 했던 ‘최신의 과거’는 바로 이 정장을 가지게 됐을 때다. T사에서 나오고 C사에서 신입사원 입사기념으로 지급한 녀석 말이다.
운동복을 샀던 것처럼 정장을 샀다면 나는 올드보이의 이우진처럼 한 층을 통채로 쓰는 펜트하우스도 부족했으리라. 하지만 나는 이 한 벌의 정장을 닳고 헤지도록 입었다. 물론 몇 벌이 더 있기는 하지만 편하게 굴렸다. 팔도 뜯어지고 다시 고치고, 유난히 두꺼운 허벅지 때문에 찢어지고 터졌던 가랑이와 봉제선을 고치고 다시 박았지만 엇그제 “이번이 마지막 수선이 될 것 같네요. 한번 더 나가면 어디서도 고칠 수 없을거에요.”라는 말을 들었다, 무려 세 군데의 세탁소에서.
내가 살이 쪄서 인지 혹은 험하게 입어서 인지 혹은 열심히 뛰거나 옷이 약하거나 잘못 만들어져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튼 나는 옷이 뜯어지게 살긴 했다.
그럼에도 나는 이 옷을 좋아해. 내가 싫어하는 돈, 내가 싫어하는 순간들, 내가 싫어하는 고까운 시기들이 뒤섞여 있다 하더라도 내게 한 평 두 평씩 쓸 벽돌들을 모아줬으니.
세련되지 못하니 나는 아직 촌놈인 것 같지만 이대로도 좋아, 멋나는 사색가가 아니라 차분한 고집쟁이라도 나는 나다. 나대로의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