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어느 골목이었을까, 우연히 접어든 붉은 벽돌이 멋드러지게 쌓여있던 그 골목을 너머 자전거, 녹색 프레임에 은색 핸들이 잘 빠졌던 그 녀석이 서 있던 바로 옆 건물이 미용실이었어. 머리카락이 꽤 길어서, 자르지 않으면 다음 주 방송에선 왠 촌놈 혹은 상경한지 얼마 안되어서 머리에는 신경쓰지 않는 그런 사람처럼 보이게 될까봐 걱정했고 그래서 미용실을 찾아 헤맸던 것이야. 나무로 된, 짙은 색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도 나는 몰랐어, 그 곳이 ‘그런 곳’인지.
앉자마자 물은 것은 “어떻게 오셨어요?”. 물론 머리를 자르러. 그리고 다음은 “어떻게요?”
미용실에 온다는 것은, 항상 쉽진 않은 일이야. 고향 동네가 아니라면 어느 곳을 고를까,에 대한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 그렇게 왔어, 어려운 길. 하지만 나만의 것일까, 이 고민. 이 길에는 많은 사연들이 있었겠지. 이 사람을 만난 사람들은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겠지. 이 친구에게 들려주지 못했던 이야기도 많았겠지. 사실 가장 먼 사람이어서 가장 이야기하기 좋은 상대기도 하더라고.
오래 전 생각이 났어. 한 친구를 잃었을 때 머리를 자를 때 마치 목을 잘라버린 것처럼 목 놓아 울어 버렸거든. 이름도 기억나, 다니던 대학교 앞 ‘이만 헤어’, 펌, 염색, 코팅같은 기본적인 약품 작업이 모두 ‘이만 원’이어서 이만 헤어였던 그 이름이 그날따라 왜 ‘이만, 안녕’의 ‘이만’같이 보였었던지.
모든 것은 사실 시작하거나 그만 둘 수 없는 일이더라고. 반쯤 따진 맥주캔에서 새는 거품들처럼 혹은 꽉 잠궜지만 한 방울씩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처럼 결국 완벽한 것은 그걸 잘라버리는 것뿐인데, 생각해보면 거세를 한 이성애자 남자라도 요염한 여자를 본다면 '발기의 느낌’만이라도 가지듯이 결국에 완벽한 것은 존재하진 않을텐데, 나는 왜 그 때 그런 고민을 했을까. 그 친구를 잃었지만 결국엔 지금도 그 친구와의 기억에 대한 글을, 지금 그나마 추스른 감정으로 쓰게 됐다.
머리를 자르고 나왔어.
나는 홍대가 아닌 망원동 어느 골목에서 머리를 잘랐어, 결국. 내가 세운 예산보다 훨씬 비싸더라고, 그 집. 다른 이유? 없어. 하지만 없다,고 또 단정지을 수 있을까. 그건, 내 마음 안의 내가 알겠지.
그래. 결국 보지 못했어, 오늘도. 내 마음의 단면, 섬세하지 못한 거친 면마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