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고는 어디에서부터 멈춰버린 것일까. 기억을 구조하러 마음 깊은 곳까지 내려가본다. 긴급구조대는 동앗줄보다 가느다란 쇠줄, 굳건하다고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는 녀석의 가느다란 허리를 부여잡고 내려간다. 음침한 곳에서부터, 끊어진 자국이 다시 나타난다면 그것으로 나는 아련한 다행을 토해 외치겠다. 그렇게 오래토록 살았다. 내가 생각하는 많은 본질들은 더 아래에 있었는데 스스로 '나'라고 '나'를 넘겨달라고 외치는 어둠들이 아주 오래 전부터 밑에서 위로 중력을 거스르며 목덜미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사조와 사상의 변화에 관한 말들이다.

내가 언제부터 언제까지 발전기, 과도기, 완성기(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쇠퇴기(는 없었으면 좋겠지만)를 오가며 끝나지 않는 허망된, 그렇다고 어디에 내놓고 '이것이 황덕현이다'고 말할만한 아카데믹한 것도 없는 상황에서 이렇게 지쳐가는 것에 대항하는 연습을 해야할까. 고민이 깊다. 크다. 많은 고민들 끝에 내가 많이 그리고 깊은 속을 담은 채 커 나가진 않을 것을 알기에 더욱 그러하다. 어제도 오늘도 혁은 나의 전화를 받지 아니한다. 송수화기를 통해 누군가에게 의심하는 슬픔에 대해 말하는 것을 정말 싫어하는 나지만 요즘은 울컥해서 플라스틱의, 유리의, 쇠의 그것을 부여잡고 이 동네에 사는, 고시에 처음 떨어져 본 스물 두살 청년처럼 한바탕 엉엉 울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혁도 고은도 평건도 엄마도 모두 제 길에 바삐 걷고 있었다. 그런 밤이었다.

내 방에 책이 쌓여간다. 녀석들이 내 키만큼 나를 넘볼 때 그때는 더 이상 나도 나를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일이 없었으면 하고 바라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