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이 움직인다. 내가 떠난다. 오직 발을 내올렸을 뿐인데 정처없이 사방으로 흔들거리는 사람들 틈에서 생각을 잃는다. 내가 무엇을 좋아했었고 좋아하고 점심식사로 어떤 것을 그리워했는지, 잊혀진다. 땀이 맺히곤 했다가 가장 높은 곳에서 바람이 '내려' 와 우리의 턱밑이 식어. 생각없는 생각, 원치 않던 오토 컨트롤의 시대를 지내고 나면 나는 어느덧 시청을 지나 아현역에 도착한다. 나를 내리게 한 것은 어떤 강한 끌림도, 예감도 아닐 뿐더러 걸음을 배워 힘을 쏟게 되는 시기의 걸음과도 전혀 다른 것이라 썩 내키진 않는다. 실은 아직 턱 밑까지 오진 않았던 일에 대한 절실함과 사람의 집단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씩 섞여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어쩌겠는가, 생각할 겨를도 없다. 다음 단계가 다가온다. 버스는 지하철보다 가끔은 더 섬뜻하다.
나는 보통 171번의 남자다. 그 중에서 가장 모자란 사람이라서 사람들의 풍경도, 내 자신의 적적함도 관찰하면서 '수송되고' 있어. 적어도 그런 필라소피 정도는 가지고 살아. 물론 그 뿐이에요. 왜냐면 아예 필요치 않거든. 나는 우리 팀의 막내니까. 그 정도면 될거라 생각하므로.
보통의 시간들은 모조리 그리워진다
일주일에 두번 공차를 마시고 타로나 그린티가 포함된 것으로. 여덟잔의 커피를 마시며 이 중 다섯 잔 정도는 무료로 얻는다. 셔츠의 드라이클리닝은 화요일에 맡기면 금요일에 찾아오고 3주에 한번은 반드시 술자리가 있다, 실은 일(정규직 계약)하기 전에는 두어달에 한번 정도였기 때문에 2-3주에 한번은 나에게 많은 편. 그래서 힘든 점이기도 하고. 아침의 알람은 보통 스물 다섯개. 여섯시 이십 삼분부터 일곱시 오분까지 2분에서 5분 간격으로 아이폰, 아이패드, 맥북과 나이키 스포워치에서 알람이 울려퍼져. 그래도 일어날 수 없을 때도 있었다니까. 징그러울 정도로 아침잠 많은 나라서도, 물론 맞지만 그만큼 피곤하기도 해서.
가장 그리운 것은 바다.냄새맡지 못해도, 만지지 못해도 볼 수만 있기라도 원해. 물론 남해안이면 더 좋겠어. 먹고 싶은 것은 단백질과 과일, 영양이 되는 것으로. 바람이 불거나 불지 않더라도, 뒷담에 서 있던 몇 그루의 대나무들도 보고 싶어. 마르거나 힘을 잃어 노랗게 변하고 잎과 가지가 말라 쪼개지고 벽에 그리움을 긁던 녀석들의 마음을, 한탄을 언저리에서 조금은 느낄 수 있을 나이가 되어서일까.
저 여자는 허리가 얇네, 원피스가 어울리는 몸매. 이 칸에는 L사의 가방이 많네. 내 맞은 편에 앉은 남자는 숙취가 덜 풀렸나봐, 바나나맛 우유를 드세요. 바나나는 하나도 들어있지 않지만 뭐, 세상에서 믿을 것이 하나라도 있던가요, 형. 가짜 휘발유, 가짜 명품, 가짜 학력과 가짜 얼굴들. 오른손에 끼운 네번째 마디의 그 사랑은 가짜가 아니길.
아침이라는 찰나들은 이성의 시기일까 감성의 곳간일까, 항상 궁금하다. 지하철의 시속은 몇일까, 이것을 타고 마음의 고향까지 갈 수 있을까. 내가 가 본 가장 먼 곳은 천안, 그 이상까지 가면 어딘가 알 수 없는 지하세계로 갈 것 같은 불건전한 상상을 하다가 이제 평일 대낮에 그런 햇살을 받으면서 4호선을 타는 일은 회사라는 거대 악당의 허가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멋진 신세계나 조오지 오웰의 1984에 나오기도 하는 통행증명서같은 것이라는 것도 깨달았지. 사랑의 반경도, 추억의 시기도, 친분의 크기와 낮잠의 달콤함도 큰 축 아래에 놓여버리는 이 아름다운 세상! 머지않아 나무가 자라는 속도와 꽃이 피는 영롱함도 마음대로 해버릴 녀석들 같아. (실은 생각해보면 이미 그렇네.)
나는 건강하고 싶어. 하지만 게으름은 '결단코' 병이야. 사실 '욕심'도 병인가?
*모든 단락은 교통수단에서 짧디짧은 찰나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모두, 모든 순간이, 모든 곳들이 그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