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살게 하소서. 엄마.
엄마. 가시가 많아요. 바닥이 질어요. 장애물이 나타났어요. 치우고 나니 다시 나타났어요. 검불이 떨어져 길을 막고 무릎만한 담장이 제 구역을 가르고 제 땅은 한 평 없어요. 엄마, 난 누울 곳이 없어요. 앉을 땅이 없어요. 무릎 꿇을 언덕이 없어요. 차마 서 있을 두 뼘이 없어요. 앞꿈치만 들어 버티다가 결국 개미 발바닥만한 보폭도 허락되지 않아 목을 매 무게를 견디며 이 세상에 흔적을 지우긴 싫어요. 이 자리가 싫어 다시 달려봤어요. 달리고 달렸어요. 내 발이 어느 곳에 흔적을 찍어내면 그 자리를 보고 다시 내 탓을 하러 달려올까봐 무서워 달렸어요. 더욱 빨라졌어요. 내 다리가 무거워지고 근육엔 젖산이 쌓이고 풀 사이 없이 또 내달리다가 뒤를 돌아보면 이 자리는 언덕이 되었다 수풀이 되었다 눈이 덮혔다 무릎까지 푹푹 꺼지는 늪도 있었다가, 그런 시간이 이렇게 쌓여 장고한 산맥을 만들었어요. 나는 숨을 헐떡거리면서 이 광경을 보다가, 다시 앞을 보니 나는 앞으로만 달리고 있었어요. 그럴 수 밖에 없었구요. 숨이 차다 다시 가라앉는 런너스 하이가 왔다가 다시 달리다 보니 나는 노래를 할 수 없게 되었어요. 땅도 없는데 공기마저 빼앗기려 했어요. 노래도 사라지고 숨이 줄고 이제는 달릴 숨도 모자라다 나는 결국 나의 공간에 도달했어요. 나의 공간은 없는데, 나는 나의 공간에 있다면 이 곳은 어느 곳일까. 나는 누구일까. 발 딛을 수 없는 공간에서 나는, 엄마의 젖도 아빠의 등도 애인의 허리도 그리운데 모든 것은 나를 이탈해서 알 수 없게 되었어요.
모든 것에서 벗어난 공간에서 오롯이 나를 바라보게 하소서, 아빠. 이미 나는 돌아갈 수 없는 것을 압니다. 어머니의 자궁은 나의 집이 아니며 아버지의 고환도 나의 곳이 아니며 무덤이나 우리집 기둥도 나의 곳이 아님을 압니다. 이미 열 여섯에 첫사랑을 하게 되고 열 여덟에 수음을 하며 스물에 술을 마시며 또 스물 몇에 누군가를 만나 입을 마추며, 다시 지금 이 시간에는 류이치 사카모토의 1989년도 앨범을 들으며 울음을 참지 못하는 이 순간의 나를, 달리다 멈출 힘을 낼 수 있는 시간으로 쌓게 하여 주소서.
멈출 수 있는 힘을 주소서. 그만 둘 수 있는 용기를 주소서.
다시, 지워버릴 수 있는 힘을 주소서.
이 꿈에서 깨고 이불을 걷어찼을 때 찬 공기가 얼굴을 때리고 콧물은 줄줄 흐르고 눈꼽이 딱딱해져 눈이 아파도 거울을 깨지 않고 나를 바라볼 수 있는 눈을 주소서, 아니면 스스로 조각할 수 있게라도.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