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도시와 문화 수업 당시 냈던 과제의 전문이다. 과제의 제목은 '부산이라는 도시 안에서 도시를 표현하는 단 한장의 사진'이었고 나는 차마 한 장으로 표현할 수 없어 세네 장의 사진으로 된 묶음사진과 짧은 에세이를 적어서 냈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는 남들과 '별달리' 내는 것에 대해서의 조언을 해 주셨고 그 사진들 중 나는 이 것을 골랐다. A4용지로 뽑아서 낸 것을 프린트 스크린해서 위에 첨부한다.



존경해 마지않는 윤일성 선생님께서는, 근 백 명이 듣는 수업에서 내 것을 뽑아주셨고 나는 이 사진을 띄우고 아래의 글을 천천히 읽어나갔다. 지금 다시 보아도 주제가 명확치 않고 글도 매끄럽지 않다. 그러나 내가 사랑하는 부산에 대한,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간 느낌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전문을 소개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길을 걷고 뛴다. 길은 사람이 있는 곳에 있었고 없는 곳도 그들은 길을 만들고 이름을 붙였다. 많은 길들이 제 갈 길을 찾아 갔고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그의 낯은 빛을 달리했다. 처음엔 덮힌 터럭(풀)이 깎였고 다음엔 뿌리마저 뽑혔으며 결국엔 민둥바닥에 두꺼운 아스팔트가 발렸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스스로의 설 자리를 내주었다. 자의와 암묵적인 합의에 의해 그 자리는 차의 것이 되었으며 때에 따라 빌릴 수 있는 자리에는 하얗게 유적같은 자국을 남겨두었다. 많은 사람들의 발에 족갑足鉀같은 것이 채워진다. 도시의 일상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망각하게 된다. 이 땅들이 누구의 것이었으며 누구를 위해 존재해왔는가에 대한 성찰은 사라졌으며 몰감각조차 사라졌다. 빼앗긴 땅, 빼앗긴 선택들과 빼앗긴 것들에 대한 회상은 꿈을 먹는 귀신이 앗아가버렸을까. 알 길 없다.


한 장밖에 되지 않는 사진으로 잃어버린 자리를 찾아가기엔 쉽지 않다. 영원한 박탈에 머무르게 된 호모사케르처럼 역사 안에서 역사 밖만 빙빙 도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았다. 그렇게 사는 것은 아니다 싶었지만 결국 나는 다시 교실로 돌아오고 말았다. 하지만 침묵같은 이 사진이 종국의 나를 대신해주리라 믿는다, 사진은 권력이라 말하는 사람에게 사진은 그저 삶이란 대답을 남기며.




남포동 강아지 할머니는 십삼년째 자리를 지켰다고 했다. 어쩌면 그 자리에 다른 누군가가 또다른 강아지들을 데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대학을 진학한 후 남포동에 살았던 옛 여자친구를 데려다 주던 날이면 언제나 할머니와 이야길 나누곤 했다. 학교신문사기자로 활동하며 이곳 저곳에서 문화적 시야를 얻고자 했던 기질도 한 몫 톡톡히 했던 것 같다.


-처음에는 애(강아지)들이 좋아서 했는데 이제는 뭐 모르겠다. 애들이 (팔려)가서 잘 사는지도 모르겠고. 이제 그만할까 싶은데, 또 애들 보고 싶을까봐.


군대를 다녀온 후 그녀는 말이 아니게 늙어있었다. 가족들이 청주와 인천에 있다고 했지만 가길 거부했다고 한다. 육십이 넘을 때까지 부산을 지켰던 그녀에게 타지를 범하는 것은 이제 와 새 시집을 가는 것만큼이나 두렵고 귀찮은 일이었을테다. ‘그냥 여기서 지내야지, 시장분위기도 좋고.’라며 언제 한마리 데려가겠냐는 그녀는 힘없이 웃음을 지어보였다.


깊은 겨울이 지나고 이천십일년 일월, 다시 그 자리를 찾았을 때 거기에는 다코야키 노점상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녀는 어디로 간 것일까. 자리를 가진 사람도 그 자리의 주인이 아니였건만 지불한 사람에 의해 그녀는 또다른 자리를 찾아나선 것일까. 그렇다면 사람은 누구나 의지와의 관계없이 자신을 잃고 얻게 되는 것인지.


자리는 의지와 의지가 아닌 것으로 이루어져있다. 두가지의 자리는 우리를 들었다 놓았다 한다. 상황과 사정이 우리의 의지 위에 있다.


우리의 의지에 의해 마련된 자리는 사회적 동의에 의한 것들이다. 도로, 그린벨트, 국경위험지대와 군사분계선, 국가가 지정한 위치들은 중요성에 미루어 스스로 강박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러한 자리를 동경하는 방법조차 잊어버렸다. 법에서 규정하면 규정하는대로 그렇게 두는 법을 익히게 되었으며 그것이 전부가 되어버린 것이다.


또한 우리는 우리의 설 자리를 잃고서 그 의미를 상실해버린 적이 많다. 도처에 속닥거리는 소리는 많지만 우리의 곁에 광장이 사라져버린지 오래다. 우리는 스스로를 소외시켜버렸다. 결국 화두가 된 것은 최근이었으며 그 모든 것을 우리가 했음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도시는 빛을 밝힌다. 빛에 달려든 사람들은 나방처럼 소비에 뛰어들지만 번번히 그것은 내 자리 아닌 곳을 헤매는 군중 속의 허우적댐이 아닐까. 가린다고 가려지지 않았고 숨긴다고 아니보이지 않았던 부끄러움들, 제 깜냥 곧게 세움도 마다하던 사람들이 비 속에 흘러다닌다. 의지와 상관없는 중력의 모퉁이를 따라 파도처럼 들어왔다가 스미듯 흐트러진다. 남녀노소 모두에게 자신의 자리는 머무르는 곳에 있지 않았다.


결국 그래서 그 할머니는 어디로 갔냐고? 모르는 일이다. 그 후로 수십번도 더 그 자리를 밟아갔지만 결국 그녀를 만나지 못했다. 곁을 지키며 토끼를 팔던 치도 모른다고 했다. 지나치듯 다코야키 집에 들러 혹시 전에 여기서 강아지를 팔던 할머니 못 보셨냐고 했을 때, 나는 탄식을 내지르고 말았을 뿐이다.


-모르죠, 전에 한번 지나가셨는데 지팡이같은 것을 들고 계시던데요?


그 후 나 또한 그 공간을 잃었다, 옛 여자친구에 대한 기억을 완전히 지우면서 함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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