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어떤 그룹 M의 모임을 엿본 것을, 그들의 회지에 고스란이 담기 위해 작성한 것이었다. 편집된 것은 2012년 겨울 회지에 고스란이 실렸고 형형색색의 케이크 데코레이션들은 사진으로 담겼다. 그러나 블로깅에서는 사진 따위는 생략해도 괜찮다, 여긴다. 어차피 내가 찍은 사진이고, 그러나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사진이니까 말이다. 혹자가 성경에서 말하길 '주님 뜻대로 하소서'라고 말했다 하지. 내 사진이니까 내 마음대로 하는 것 쯤은 심려말길 바란다. 오해나 사탕발림에 노출되기 싫은 사람들, 나 외에도 많을 것이니까.
화기애애한 공간이었다. 흐린 날이었지만 회원들은 모두 늦지 않고 게더링 장소를 찾았다. 공간의 어디에선가 고소한 냄새가 퍼져나온다. 우리가 만들 케이크의 빵들이 오븐에서 하나씩 나오고 있었다. 정해진 시간이 되고 연분홍 제복을 입은 전문 제빵원이 우리를 그 실습실로 인도한다. 식지 않은 오븐들이, 추위를 뚫고온 이들을 온화하게 감싸준다. 여기는 부산, 그리고 지금 막 제 59회 MKMG가 시작되었다. '멘산의 창의적 케이크 공장'이 문을 열었다.
"가장 빨리 만든다고 좋은게 아녜요. 여러분들의 기발함과 상상력을 케이크에 잘 녹여주세요."
선생님의 말씀에 맞춰 아이싱(icing), 데코레이션 등을 준비한다. 일일학생이 된 멘산들은 분주하게 준비를 시작한다. 생크림을 주걱으로 개고 데코레이션용 생크림 별 깍지의 모양을 구경하기도 한다. 이날 행사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박찬덕 멘산은 더욱 멋진 케이크를 만들기 위해 개인적인 비장의 무기도 준비해왔다고 한다. 넉살좋은 웃음이 매력적인 윤성화 멘산은 인터넷에서 구해온 케이크 도안도 꺼내보며 케이크을 이리저리 돌려본다. 모두 열심히다.
아이싱은 케이크의 기본이다. 티 하나 없는 원통의 그것을, 제빵선생님은 굴곡있는 빵 위에 탄생시킨다. 원주율과 진지한 과학, 정밀한 수학과는 거리가 먼 곳에 있는 제과제빵원이지만 그 누구보다 섬세한 손놀림으로 설원의 풍경을 원판 위에 재현시킨 그녀는 "저는 오래해서 잘하지만, 팁을 드리자면 왼손과 오른손을 자연스럽게 움직이세요. 너무 겁먹거나 떨지 마시구요." 라는 말과 함께 다음 데코레이션으로 넘어간다. 모두가 제일 궁금해하는 순간이다. 저마다 '아이싱은 할 만 하겠네.' 하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스스로의 케이크 앞에 서기 전까지는.
"여기에 깍지가 있어요. 별모양도 있고 장미처럼 조금 더 얇은 것도 있어요. 짧게 짜서 끊어도 되고 S자로 휘돌려도 되요. 두개를 겹치거나 색에 조화를 주거나 다양한 방법이 있는데, 가장 기본이 되는 것만 보여드릴게요. 여러분들이 저보다 머리가 좋으시니까. (일동 웃음) 저도 여기서 만들고 있을테니까 언제든지 와서 물어보세요. 자, 그럼 시작!"
맨 안쪽 자리에 앉은 박승국 멘산은 선생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자신이 가져온 아이디어를 말하기 시작했다. "가장 멘사답고 심플한 케이크를 보여줄거에요. 시침과 분침을 아이디어로 가져왔는데 모두 깜짝 놀라실걸요? 디자인이 간단하니 케이크 초보인 누구나도 실패하지 않는 달력케이크! 준비 다되면 보여줄게요. 얼마 안 걸려요." 초컬릿도 스무개 정도 따로 빼놓고 간격을 재는 눈매에서 진지함이 엿보인다.
다른 테이블에서는 이현수 멘산이 눈에 띈다. 이 날의 모임은 멘산과 더불어 비멘산도 참여하는 행사였기에 애인, 가족을 동반한 멘산들도 많았는데 비멘산인 아버지를 동반한 가족참가는 이현수 멘산이 유일했다. "(아들이) 간대서 한번 따라와봤습니다. 어떤 곳인지 도통 알 수가 없으니 간접경험도 되구요. 그런데 너무 유익한데요? 집에 가서 먹을 수 있는 것도 주고요." 말없이 케이크에 이것 저것을 얹어보는 이현수 멘산에게 "좋은데? 예쁘구나!"를 연발하는 사이 전체적인 모습이 잡혀간다.
장규현 멘산의 손놀림은 거의 예술가의 그것에 가깝다. 잭슨 폴록의 귀환이다. 피카소 이후 최고의 현대미술가로 꼽혔던 그의 물감 흩뿌림, 파괴적이되 섬세함, 무분별해보이되 그 속에서 규칙을 들여다보게 하는 감각이 케이크에서 펼쳐지고 있다. 오직 흰색 생크림 하나가 튀고, 뜨고, 다시 제멋대로의 모양을 그리지만 누가 그랬던가, '나무가 아닌 숲을 보라'고. 케이크를 주걱으로 때리자 생크림이 솟아오르고 원뿔이든 원통이든 알 수 없는 모양이 반복되지만 이 케이크는 다시 만들 수 없는 것임에는 분명하다. 오직 그만의 케이크인 것이다. 선생님이 다가와 "어디서 혹시 배우셨어요? 이건 그냥 실력이 아닌데..."를 읊조리다 사라진다. 실력이 아닌 상상력으로 승부하는 장규현 멘산, 그러나 이내 어느 정도 모양이 나오자 한참을 쳐다보고만 있다. "아, 이 다음엔 뭘하지? 이 모양에다 뭘 더하거나 빼기도 뭣한데."
소소한 모임(Gathering)이지만 스스로들의 아이디어가 폭발하는 조그만 우주가 스물 몇 개 지어지고 있다. 순수한 아마튜어리즘의 열정을 프로페셔널이 결코 이길 수 없음도 깨달아간다, 달달한 크림과 초코냄새들이 퍼짐과 더불어.
수십분이 지나고 결국 모든 케이크들이 제 자태를 찾았다. 물론 선생님은 활짝 웃지 못했지만 멘산들이 그보다 큰 웃음을 지었으니 그걸로 된 것이다. 임의로 등수도 정하고 상품도 나누어 가졌다. (굳이 회지에 등수를 들먹거리고 싶지는 않다. 꽃들이 피어있는 자체로 아름다운데 들꽃이라 순위가 낮고 백합이라 1등을 매기긴 싫으니까.) 상자도 뚝딱뚝딱 만들어 저마다의 소중함들을 차곡차곡 간절히 넣는다. 부케를 든 처녀처럼, 행복함을 두 손 가득 든 이들이 카메라 앞에 선다. "자, 모두 여기를 보세요!"라고 말했지만 나는 한마디를 빼먹었던 것 같다. 모두와 여기를 사이에, "케이크를 함께 먹을 사람을 생각하면서" 정도가 좋지 않을까. 그래, 그 정도면 좋겠다. 다음 MKMG까지 모두 행복함 속에서, 안녕!
"찰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