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空에로의 귀환

from 하루들의 합 2012. 12. 28. 21:35


1.

몇 일 전의 고민이 여러 갈래로 폭발하고 있다. 나는 욕심이 많은 남자이며 그 욕심을 줄이는 것을 잘 하지 못함은 메타적 시선에서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조절법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여전한 답답함 때문일 것이다. 답답함은 사실 그러한 소심함에서 비롯되었을테고 나는 지난 몇 년간 나를 거쳐간 많은 여자친구들에게 (속으로나마) 진지한 용서를 구했다. 걔 중 몇몇에게는 마취된 듯한 사랑의 마음으로서 결혼에 버금가는 '열정'을 바쳤지만 '열정만' 바쳤던 것은 아닌지에 대한 미안함들이 나의 숨구멍마다 흘러나왔다. 어려서였다고, 치부하기에는 내가 바라는, 그리고 바라봤던 나의 모습에 비해 치졸하고 옹졸했기 때문이리라. 커다란 어른이 된 것 마냥 여자친구(들)에게 '나만 믿어'라던지 조그만 아이의 흉내를 내면서 '너와 맞춰가면서 결정하고 싶어, 우리의 일이라면. 그러니까 니가 먼저 의견을 내봐'라는 극단의 모습은 (혹자가 말한) '전인적 인간'의 모습이 아닌 '회피결정체'였음을 인정하기 싫어서였음이리라.


2.

많은 시간 동안 사람들과 일을 벌였고, 주위에 사람들이 많았다. 인정한다. 그러나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때문인지 마음을 깊이 열지 못했다. 당연히 나는 침묵했고 진짜 하고 싶던 나의 이야기는 적었다. 그렇다고 친해지지 않았느냐고 묻는다면 '어느 정도였다'고 밖에 답할 수 없는 나를, 그대들. 용서해주길 바란다. 결코 사람을 잰 적은 없었다. 맹세해. 더욱 가까워지고 싶었던 사람은 '고백컨데' 있었다. 하지만 두 경우 모두를 도합하더라도 나는 자의적인 침묵을 그칠 줄 몰랐다. 그만큼 나는 겁이 많았고 쫄아 있었으며 무릎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보이진 않았더라도 말이다. 두 눈을 제대로 마주치기 힘들었던 시절이 길었다고 하면 믿을까. 하지만 언제나 애인들이 가장 많이 했던 말조차 "왜 눈을 안 마주쳐 줘?"였다면 나의 심각성을 조금은 인정하리라 믿는다. 분명히 '안 마주친 것'이 아니라 '못 마주친 것'이었는데 말이다. 오래지 않은 시간이 지났고, 이제는 연습 끝에 좋아하는 사람과'는' 눈을 마주칠 수 있는 내가 되었지만 다시 '좋아하는 사람'이 문제였다. 거침없이 친해졌던 사람들, 지금도 이야기를 하자면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어느 정도 선까지만) 친분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보이지 않는 보호막 가운데 둘러쌓인 사람들 중에 어떤 사람에게 내 바늘을 사용해야하는지는 아직도 풀 수 없는 고민이다.


또한 만나는 사람(들) 외에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관념도 일관성없게 바뀌고 있다,만 이건 다음 글에 써야지.


3.

다시 처음의 나로 돌아간다. 처음은 어느 순간을 말해야 할까, 실은 고민이다.

하지만 사춘기 시절, 자습시간 복도 창문 앞에 자습서를 펼치고 '졸려서'라는 핑계를 대며 하늘을 볼 때, 지는 노을을 볼 때, 빛이 사라진 하늘이 붉게 물들어 홍차를 두어번 내린 찻물색의 구름 속에서 발견할까 생각했던 신神의 분신을 기다릴 때의 나보다는 조금 더 큰 나이고 싶다. 키, 몸무게, 발 사이즈나 음경 크기, 줄지 않은 머리 둘레와 귀의 크기까지. 내 몸은 그대로이지만 속에 감추고 있던 진심어린 내 마음은 자랐다 다짐하는데, 하아. 이제는 모르겠다. 그저 나 자신에게 데면데면하지 않은 나이고만 싶다.



4.

나는 미약한 인간이다. 그러나 두 손에 힘을 주는 연습을 하고 있다, 지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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