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방에는 오직 스위치가 하나 있다. 화장실이 밖에 있는 방을 구하다 보니 집 안에는 오직 하나의 스위치가 있으며 그것은 방 전체를 밝히는 전등을 켜거나 혹은 끄는 역할을 담당한다. 가끔 해가 들지 않는 낮이나 밤에 불을 덜컥 끈다면 곧장 내 방은 어둠의 소굴이 되곤 했다. 그러고 나면 나는 감성적인 영역으로 풍덩 빠져 들어 버리는 것이다. 서서히 조도를 낮춘다거나 강도를 단계별로 조정할 수 없는 이 스위치의 특성 상 나는 이성과 감성의 영역을 자유롭게 들락날락 거리곤 했다. 그러한 전환은 헤어진 여자친구의 얼굴이나 입술, 목소리나 가슴이 언뜻언뜻 기억남에 대해서도 거부감 없었으며 심지어 대선후보 P 씨에 대한 측은한 마음까지 불러 일으키게 했으니 심각한 정도였다. P씨는 태어날 때부터 고립된 곳에서 났다. 좋은 집에 좋은 차, 가보지도 못한 곳에서 인형과 옷을 공수됐다. 그는 영문도 모른채 받았고 좋아했으며 다시 알지 못했던 사람들 앞에서 고독한 시기를 지냈을 것이다. 진심을 알고 듣기 전에 이미 직위와 이권의 대상이 됐으며 사상을 알기 전에 사상이 됐으며 고민을 할 시간 앞에서 골칫거리가 됐다. 그 모든 것이 어두운 곳에서 바라본 신문 위의 그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다시 스위치에 힘을 줘 누르고 나면 그는 그저 재미없는 정치인의 한 사람일 뿐이었다, 말을 잘 못하는. 여튼 나에게는 그런 스위치가 있다. 마음도 순식간에 바뀌곤 한다.
나에게는 오직 하나의 방이 있다. 이 방의 주소와 크기, 동네의 분위기와 옆방에서의 소리는 자꾸자꾸 바뀌었으나 나에게 방이 단 하나 인 것은 결코 바뀌지 않았다. 처음 타지 생활을 시작하며 나에게 주어진 공간에는 오직 나만이 들어갔다. 그러다가 다시 둘이나 셋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기도 했으며 고슴도치, 장수풍뎅이, 고양이와 열대어들까지 많은 종속과목강문계 들이 나를 거쳤다. 야한 이야기를 보거나 슬픈 영화를 보면서 배게를 때릴 때, 빨래를 개키거나 자위를 할 공간도 언제나 이 곳으로 한정되어 있었다. 크고 작은 일들이 시간의 도장을 받았으며 구구절절한 변호들이 일기장에 남겨질 때도, 굳이 뽑지 않아도 되는 제출한 이력서를 뽑아 찢고 던져버리던 곳도 유일을 가장해 내 자신을 풀어헤칠 수 있는 곳, 오직 한 곳 뿐이었다 생각한다.
나는 한 명의 사람이 간절하다. 다만 2012년의 '나'에 대한 가장 큰 발견은 '감정의 소모성'에 대해 인지해버리고 말았다는 것일테다. 나는 사랑의 소모를 변모로 착각하고 있었던 것일까. 아직 '완벽한 사랑'에 대한 나의 환상이 해체를 시작하진 않았다. 그러나 스위치를 찾아버린 것일테다. 사랑이 헤지고 나면 새로운 피부가 자라나는가에 대해, 나는 그리 좋은 재생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없는 것, 그것 역시 유일한 숙명이다.
그리하여,
나는 결혼을 하고 싶은 것일테다, 요즘들어서. 불완전한, 위험가득한 제도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이 외로움, 나의 소모, 재정적 한계, 여색을 탐하지 않는 탈남성적 본성과 미를 탐하는 가치를 고류할 수 있는, 되도록이면 살갖같은 결혼을 하고 싶다. 좋아하는 사람의 손을 잡으면 땀이 쏟아지는, 내 부끄럼많은 손을 기어코 놓지 않는 사람을, 나는 힘주어 안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