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y

from 비,평,상의 여럿 2011. 4. 2. 16:09

1.

정말 오랜만에 영화를 봤다. 실은 엑티브엑스는 꽝이고 실제로 타프로그램과 호응도 잘 맞지 않는 맥에서 영화를 보기란 쉬운 일은 아니니까. 감흥이 돌만한 것을 찾다가 언제였던가 내가 영화를 마지막으로 틀었던 날을 떠올려보았다. 아, 물론 영화관에서 본 언노운 등을 제외하고 집의 그것에서 말이다.

영화를 정말 자주 보던 날들이 있었다. 감독별로 잘 정리해 봉준호, 김기덕, 홍상수, 마이클베이 이런 식으로 죽 나열해놓고, 실은 퍼센트 단위로 1이나 2정도 빠르게 보아도 상관없을 스크린의 정적들을 모두 느끼고 싶어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가고 동영상 재생 프로그램이 자동종료될 때까지 가만히 모니터를 쳐다보고 있던 날들. 무엇이 나의 그런 날들을 앗아갔을까 떠올리다 그만 조용히 버튼을 누르게 된 오늘이었다.

레이는 많은 영화의 부분들을 떠올리게 해 주었다. 탐행크스가 나온 '터미널'의 어떤 부분과 안젤리나 졸리의 '체인질링'의 순간, 윌 스미스의 '행복을 찾아서'까지. 떠올리는 동안 다시 든 생각은 '어떤 생각이 나의 이런 생각들을 수면 위로 올라오게 하는가'에 대한 고민과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의 냉정함을 판단하는 기준은 다른 어떤 누군가의 냉정함을 기준으로 하는가'에 대한 깊은 생각에 깊게 빠지는 시간을 선물해줬다.

2.

우리는 가끔 그런 순간들에 깊게 빠져든다. 상황의 피인지에 의한 자기 망각상태, 이성과 냉정을 되찾아 사리분별과 맥박수가 당신의 생각대로 조정된다 믿는 상태의 괴리에 대해 말이다. 좀비가 가득 등장하는 호러물을 보고선 길가를 지나가는 인상이 어두운 남자를 피하기도 하고 게이샤나 호스티스가 가득 나온 스크린을 탈출하고선 눈매가 날카로운, 아찔한 힐의 여성을 보고 평소에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섹스 충동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이제 종용의 말을 던져본다. 당신이 또 다른 Ray나 흔치 않은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을 때 있는 그대로의 그를 만나고 영화나 실제의 그것처럼 Ray가 당신의 손목과 어깨, 얼굴을 더듬게 해 줄 수 있겠는가에 대해 말이다.

그를 존경하지도 동경하지도 심지어 동정하지도 않는다. 그는 나와 같고 나 자신 같으며 혹은 확연히 누구나 알 듯이 막연한 타자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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