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왜. 그와 나를 이어주던 이야기였다. 언제나 말이 없던 사람, 그는 나를 떠나기 전까지 언제나 '왜'만 외쳤다. 불분명한 이야기도, 그저 할 말이 없어 문지르는 소리가 아니었다. 분명한 목적과 지시성을 지닌 '왜'였으나 나는 그 '왜' 소리가 싫지 않았다. 그에게서 들을 수 있는, 어쩌면 단 한마디 비명이었는지도 모르기 때문일 것이었고 또 어쩌면 내가 닮고 싶은 동경의 모습이었기 때문일런지도 몰랐다. 그렇게 나는 그에게서 외마디 '왜'만 수천 수만번을 듣고서 그를 떠나보냈다.
2.
할 줄 아는 이야기가 없었다. 아니, 실은 말로 풀어낼 자신이 없었다. 어떤 날의 기분이 어떠한지, 어떤 사람에 대한 기분이 어떠한지는 말을 내뱉는 순간에도 시시때때로 변하고 있기 때문에 겨우 나같은 사람에 의해 판별되게 만들고 싶지 않은 까닭도 있었을테다. 어쨌든 나는 좀처럼 말을 뱉지 않았다. 의외로 그것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쉽게 말해 나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리라 생각하는, 기름기만 낀 번지르르한 영웅의식이나 "내가 말이야. 사실 그 때 왜 그렇게 말했냐(혹은 행동했냐)면 말이야."로 시작하는 변명따위를 뱉지 않을 것이라면 오감五感 중에 어느 하나를 포기하고 살아가더라도 불편함이 없을 것이라 확신을 먼저 던져버린 것이다. 선언은 쉬웠다. 책을 보고 암기해야할 내용이 생기면 눈과 머리로 되뇌면 되었고 주사를 맞거나 잠결에 화장실을 갈 때 새끼발가락을 문턱에 빡! 하고 찧더라도 '아' 소리를 내지 않고 이를 악 물고 울음을 터트려 버리면 그만이었다.
처음 그 사실, 말 따위가 필요치 않을수도 있다는 것, 을 들킨 것은 그녀가 내 방을 찾아왔을 때였다. 어차피 친구도 많지 않았고 굳이 수업시간에 잘난체 손을 들고 교수의 필기를 지적질하던 학생도 아닌, 수더분하고 조용한 학생이었기에 내가 금언禁言에 들어갔다는 것은 대학교에 입학한지 세학기가 지나도록 누구도 몰랐을 것이었다. 나는 비루한 차림의, 독립해서 살아보겠다며 집과 인연을 끊은지 이제 겨우 세 달이 지나는 철부지 대학생이었고 그녀는 삭발이나 분신을 불사하겠다고 지랄탄, 사과탄이 날아다니는 교정을 뛰어다니던 '학교 영웅'이었다. 수배가 내려진 그녀가 이집 저집을 전전하다 들른 내 집에서 그녀는 내 입을 열고야 말았다.
"요새 참 지랄맞어, 씨팔. 이제 막 학교까지 들어오려고 한다니까. 저 밑에 닭장차 들어오는 거 봤냐? 아니, 씨팔. 우리가 무슨 닭이야. 이야기로 하자는데 왜 곤봉질하냐 이말이지, 씨팔."
"......"
"진짜 잡아쳐넣어야 할 놈들이 우리냐고, 씨팔. 우리가 먼저 돌 던졌어? 지들이 지랄탄 던졌지. 진짜 언론, 군대, 의원들까지 제대로 하는 새끼들이 없어, 씨팔."
"......"
그녀의 분통은 혼잣말로 계속됐다. 내가 굳이 내가 입을 열지 않아도 그녀는 그녀의 모든 말에 내가 동의할 것이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민주화, 통일, 학생주권으로 시작된 그녀의 이야기는 정외과 부회장, 변절한 그의 동생, 경찰인 자신의 아버지가 사표를 쓴 이야기를 건너 아무것도 모른 채 겪었던 야릇한 첫경험 이야기로 이어지고 있었다. 언성이 높아지는 그녀의 옆에서 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거리며 맞장구쳤다. 이대로라면 곁에서 소주나 두어병까고 취한 영웅을 아랫목에 뉘어 그대로 재우면 될 것 같았다.
"그런데, 너 왜 아까부터 아무 이야기도 안하냐? 너, 경찰편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