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하루들이 자꾸 가. 날이 쌓여. 사람들이 모두 봄이라고 한다. 아직도 추운데, 옷깃을 여미다가 봄옷이 이렇게도 없는 것을 깨달았다. 나, 여수를 떠나 부산으로 올 때 1학기는 나의 마지막 학기로 만들거라면서, 누구한테 잘보이거나 어디에서 멋져보일 일 없을거라면서, 그런 일 안만들고 지금 앞에 없던 것들을 쌓는데 집중하겠다 했던 말이 기억났다. 그래서 나는 지금, 기껏해야 학교야구점퍼, 초겨울에 입을 법한 패딩 그리고 어두칙칙한 옷들밖에 없는 방에서, 그러니까 입을 것 없는 옷을 바라보며 무엇을 입을까 고민하고 있다. 어차피 여수에 가도 입을 옷 없긴 마찬가지, 사질 않으니까. 그렇게 살겠다 마음 먹었는데, 이게 그래도 곧 달력은 4월을 향해서 그런지, 사실은 아무에게도 마음쓰질 않고, 혁일 만나거나 그 외의 사람들과 지속적으로 만난다거나, 깊은 이야기를, 대나무숲에 울음을 모아 오열하듯 무작정 쏟아낸다거나 하는 것도 없어서인지, 마음이 정리가 안된다. 사랑하지 않는거, 누굴 만나지 않는거, 사귀기는 커녕, 이제는 사랑을 받지 않는 한 사랑하지 않아야겠다 다짐하는 마음까지, 아무 것도 정해지지도 정리되지도 않는 순간들의 연속이란거, 언제부턴가 눈물은 꼭 참아야되고 좋아하는 여자 손은 허락맡고 잡아야하고, 그것도 피아노 건반을 처음 만질때 슬며시 누르듯 만진다는거, 실은 그런 자극은 이미 오래 전에 잊혀지고 지워지고 덮히고 매워서 넓은 강이 되었다 그 강을 다시 매우고 꾹꾹 눌러진 간극이 되었다는거, 그런 사실이 슬프거나 아쉽웠던 순간마저도 잊혀져서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거. 그건 아쉽지 않다.
파랑새가 파란 노래를 하고 파란하늘을 날다 다른 파란 세계로 떠나듯 나는 어떻게 될까 고민해보다가, 되는대로 살 수 있을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만 만나면서 살 수 없다는 거 알면서, 그러면서도 슬며시 나를 들었다가 놓는다는거, 북을 쿵쿵 치듯이 마음을 구르는 소리가 나에게도 들리지 않을만큼 나에게서 멀어져 마치 심장없는 순간인냥 그저 그렇다는거, 아무리 크림을 발라도 주름은 생기고 피부는 늘어지고 아주 어릴 적 짠 여드름자국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고등학교 어느 시절의 순간처럼, 구름이 흐르다 아무도 모르게 사라졌다 멀리서 다시 조그만 구름이 되길 기원하는 것처럼, 그냥 그렇게 아무 것도 모르게 기다리고 기다리는 시간들이 있을 것이라는 것.
그냥 휘갈기다보면 그 어디엔가는 내가 있겠지 싶어서, 그냥 그랬다. 자기 전에는 문학상 소설이나 수필집의 단편을 읽는 것이 편하다. 원고지 200장이면 거뜬한 하루들이 지나가고 차간다.
미안, 미안해. 미안해, 미안. 쏟아지는 건 별빛아니고 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