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그리고 자국, 2011년 5월, NEX-5>
오늘은 날이 궂었다. 바람도 꽤 불었고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해가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오늘따라 유난히 그리웠는지도 모른다. 수업과 거리, 습관같은 도서관을 지나 현미찹쌀냄새가 나는 집에 들어왔다. 아직도 바람이 새차다. 괜한 반찬투정이 아무도 없는 주방을 갈랐다. 두 손이 잘게 모아져 있었다.
나는 오래된 나쁜 습관이 몇 개 있었다. 대표적인 것은 손, 그 중에서도 손가락 끝을 뜯는 자학의 일종이 바로 그것이었다. 어떤 이들에게 '애정결핍의 표상'처럼 여겨지는 이 버릇이 언제부터 나의 살점에 붙어있었는지 알지 못하지만 기억나는 가장 먼 날은 초등학교 2학년 때였던 것 같다. 가장 존경하는 K 선생님께서 내 손등을 찰싹찰싹 때리시면서 "크게 될 녀석이!"라고 말씀하시던 것이 아직도 기억나기 때문이다. 선생님 말씀대로 나는 그 후로도 곧 잘 커서 키도 174cm 몸무게가 80kg인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나는 손가락을 뜯었다. 그 시기에는 그래도 입과 손으로 그 살을 찢어냈던 것 같다.
군대에 들어가면서부터 다시 나오기까지 많은 훈련과 시간들을 보내면서, 이를테면 타지에서의 날들은 괜찮다. 그러나 새로운 상황들과 상황들이 만들어낸 기가 막힌 우연들은 나를 긴장과 불안으로 쑤셔넣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일테니까, 나는 새로운 병기를 하나 얻었다. 바로 손톱깎이와 칼이었다.
칼로 손을 자르거나 했다는 말은 아니다, 안심해. 다만 입으로 손톱이나 손끝의 살을 뜯고 난 자리가 예쁘지 않아 여기를 슬슬 긁는 버릇이 생겼다. 싫고 슬픈 현실이지만 모나보이지 않으려는 행동이 자의식으로 박혀 내 상태 어디론가 들어온 듯 했다. 그리고 나는 그 '훈장'을 안고 다시 사회로 내팽개쳐졌다.
기모후드티를 뒤짚어쓰고 다시 그 위에 고어텍스 바람막이를 입었다. 바지는 짙은 감색 숏츠. 비를 맞을 것 각오하고 냅다 온천천변으로 뛰어 나갔다. 그저 기분이, 오늘은 뛰지 않는다면 이 분忿이 달아나지 않을 것 같아서. 찔금찔금오는 비에 안심하고 나왔더니 유량이 확 늘만큼 비가 쌓여있는 천변은, 내가 쓰고 있는 소설 두 편 중 하나의 무대가 되는 곳이기도 해 스산한 마음이 들었다. 어디선가 그 이야기에서나 나올법한 외눈난장이가 난간에 앉아 아무도 오질 않으리라 생각했던 방향에서 미친놈이 뛰어오는 것을 멍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을 것도 같았다. 물론 기우일 뿐이다. 거기에는 아무도 없었다. 저 멀리 할머니 한 분이 우산을 쓰고 물병이 가득 든 조그만 손수레를 끌고 가고 있을 뿐이었다.
얼마나 뛰었을까. 삼십분이 조금 넘게 지났고 나는 지하철의 아랫자락, 다리의 구석에 앉아 헉헉대고 있엇다. 괜히 갑자기 세차진 비를 탓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습관처럼 두 손을 모으고 손톱을 뜯으려던 찰나에 멀리서 남자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건너편 오르막길 위였다.
"이 씨발년아. 죽어."
"그래, 죽여라. 니가 뭘 잘했다고 악을 질러."
우산도 없는 그들은 중년의 부부같았다. 아니, 어쩌면 불륜이나 폐륜을 저지른 이들일지도 모르지. 옷이 몸에 꼭 붙도록 비를 흠뻑 맞은 그들은 서로의 뺨과 머리, 어깨를 때리고 있었다. 맞는 것은 외려 남자쪽이었고 어쩐지 여기저기서 보고 들은 것처럼 뻔한 '바람핀 남편과 억하심정의 아내'같은 드라마가 생각났다. 오산이었다.
"집에 애들 두고, 그 새끼가 그렇게 좋디? 젊어서 그렇게 좋든?"
영화는 사랑과 전쟁을 지나 비스티 보이즈를 향하고 있었고 본능적으로 그 쪽으로 다가가던 나를 두 사람이 쳐다봤을 때 나는 다시 전속력으로 가던 길을 뛰고 있었다. 괜시리 잠시 무서워지기도 했다. 우산없는 세사람의 상황도 그랬고 나 스스로 내면에서 만난 '그들의 부끄러움에 대한 접근'도 그랬다. 이건 오지랖도 참견도 아닌 변태짓밖에 되지 않을 뻔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찬 빗물이 점차 잘아졌다. 감빛 빛물과 먹빛 어둠이, 이제 함께 섞여 내리는 시간이 돼 집을 향해 집을 향해 길을 밟았다. 머릿 속에 '이 신발, 옷, 속옷 언제 다 빨지.'하는 원초적인 생각과 함께 불현듯 '사람은 왜 남이 나에게 참견할만한 틈을 주는가. 왜 그렇게 만들어진 것일까.'하는 철학적이고도 어이없는 물음이 들었다. '여기는 사회니까 그래.'라는 쉬운 정답도 함께 떠올랐지만 그것은 온전한 답이 아니었다. 그냥, 둘러 넘겨버린 '철학적인척 하는' 소리밖에 안됐으니까.
집에서, 나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내 버릇 중 하나를 온천천에 버리고 온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어떻게 되었나면, 왼손을 들어 오른손 끝의 살점을 만지작 거리다가 (의식에 상관없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양손을 떼어 불가에서 접족례를 할 때의 모양처럼 손을 펼치게 스스로 시키는 것이었다.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기까지 20년이 걸렸는지 아니면 각성에 의해 몸이 무의식을 이긴 것인지 알 수 없다. 확실한 것은 내 손이 아름다워질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이 존재한다면, 나의 손을 포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 것도 아닌 내 손은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았다. 나는 십오년만에 손톱깎이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