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orium

재활용의 컵 홀더는 딱 크레프트의 딱 그 색이었다. '일회용으로 제작되어 있으며 그러한 용도로 사용되도록 제작되었음'이라고 새겨진 앞면에는 요괸지 여신인지 머리에 꽃 아닌 별을 달고 있는 여자가 어이없는 웃음을 달고 있을 뿐이었다. "원래 색깔을 그렇게 쓰는거야." 넌 그렇게 심드렁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재활용의 느낌이, 감흥이 조곤조곤하게 사람들 마음에 새겨서 내 브랜드가 착하다는 느낌을 들게끔하지. 그런데 그 뿐인걸. 난 유리로 만든 컵홀더를 본 적이 없어. 혹은 사기라거나, 아무리 못해도 고무로 만든 컵 홀더를 나눠주거나 판다면 어떨까 하고 말이야. 하지만 결국 컵홀더는 재활용일 뿐이야. 그것도 '나 재호라용이다'고 자랑스럽게 드높혀진 글씨와 그 지긋지긋한 크레프트지 색깔" 어둠빛이 하늘로 축배를 쳐 들었다. 한 숨을 쉬며 커피찌꺼기에 담배꽁초를 박지도 않았다. 난 처음부터 금연가였으니까 말이다. 그러고 보면 어디에나 언제나 선택은 있었다. 흡연하거나 평생 금연하거나, 재활용인 척을 하거나 재활용하는 척하며 재활용하거나 말이다.

내 뺨에 검은 그림자가 낮게 드리웠다. 그건 아마 내가 선글라스를 끼우거나 선글라스를 끼운 척 하며 선글라스를 끼웠거나 했기 때문이리라. 나는 그렇게 종일, 색맹인 외증조부에게는 이나저나 똑같이 흙빛으로만 보일, 이제는 눅눅해져 더 빛이 깊어진 크레프트지 재활용된 컵 홀더가 냉기를 감싼 아메리카노 한 잔을 서둘러 빨아들였다.

다음 연재는 '흑백필름에 대해 씁니다.